사회적 분위기와 집안의 애사로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시기에 지난 6월 섬 여행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2박 3일 일정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나자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이미 여행 계획을 다 마쳐 놓은 상황에서 나를 초대하였던 것이다. 침체된 나의 기분을 힐링시켜주는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에 지체 없이 동참하였다. 동행할 멤버는 여고동창 부부팀 3쌍과 그 친구 그리고 나 8명이 함께 하였다.
10월 29일 08시 사당역에서 만나 가을의 상징, 단풍과 억새를 보기 위해 영남알프스로 출발하였다.
전용차선의 고속도로를 순조롭게 달리며 금강휴게소에서 휴식도 잠시, 추풍령고개를 넘어 신나게 달려 주마간산하며 청도휴게소로 진입하였다.
때마침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휴게소 옆 한가한 나무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데크 맞은편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냇물과 함께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밥과 칼칼한 고추전과 파김치, 시원한 총각김치와 알싸한 홍어회와 막걸리, 살어름의 소주를 곁들인 식사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의 포식으로 과식을 피할 수 없었다.
식후 얼큰한 취기를 느끼며 차에 오르니 멋진 경관과 함께 흥에 취해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하였다.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는 현존 국내 최장거리의 왕복식 케이블카로 선로 길이만 1.8km에 달하며 상부역사 해발 1,020m 고지까지 재밌고 여유롭게 도달할 수 있다.
'천황산 하늘정원을 이어주는 신비의 하늘길'이라는 케이블카는 천혜의 영남알프스를 조망할 수 있다.
녹산대 전망대에서 맞은편 백운산의 숲과 바위가 어울려 백호를 닳았다는 '백호바위'를 볼 수 있다.
케이블카 탑승정원을 50명, 운행속도 5m/초, 표고차 669m(국내최고)라 한다.
이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경관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산등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예약된 숙소로 가기 위해 차량에 올랐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배내골 상류에 위치한 '창밖을 보라' 펜션이었다.
숙소는 3층으로 된 2동의 건물로 내부 시설들도 깔끔하고 여행객들에게 맞춤 구조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깊은 산중이라 주위에 편의점이나 식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녁 만찬을 위해 병곤대장이 소리 없이 먼 곳까지 들러 삼겹살을 푸짐하게 구해왔다. 언제나 치밀하게 보살펴주고 모든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병곤대장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재밌는 여행의 보증수표 아이콘이다.
역시 나들이 여행은 오감이 즐거워야 한다. 그 중애도 특히 눈과 입의 즐거움은 으뜸이라 할 것이다.
저녁 만찬도 업된 기분으로 삼겹살에 소주와 막걸리로 연거푸 건배를 권하며 취중의 꿈자리에 들게 되었다.
10월 30일 아침 이른 산행을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등산로 주차장으로 나섰다.
청명한 날씨에 간월재를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걷는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서두른 덕인지 간월재에 도착하니 인적이 드문 한산한 분위기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를 넘어가는 간월재는 억새 군락지로 유명한 울산 지역의 명소다.
간월산은 간월사라는 사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간월산과 신불산에 이르는 능선의 서쪽 사면에는 완경사의 산정 평탄면이 전개되어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억새의 절정기는 10월이며, 등억온천단지 부근 임도를 따라 2시간 정도 오르면 간월재 억새 평원에 닿는다. 산정에 억새 초원을 이룬 고원이 많이 형성되어 있고, 산악 경치가 아름답고 웅장해서 영남알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월재에서는 해마다 억새 축제 프로그램인 산상 음악회 울주 오디세이가 열린다고 한다.
북쪽에 가지산(1,241m)을 두고 서쪽으로 재약산(1,110m)을 바라보며 남쪽에는 신불산(1,159m)과 맞닿아 있는 간월산(1,069m)은 동북쪽의 고헌산(1,034m)이 눈을 흘기며 일시에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간월재의 능선에 서니 동해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셀카봉으로 인해 촬영이 어려웠다.
간월산을 향해 오르다 보니 동쪽 산아래 언양과 멀리 울산이 보이며 거센 바람이 계속 불어온다.
거센 바람의 영향인지 절정기가 지나서 인지 억새 군락지의 억새 솜털들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의 걸음 측정을 보니 주차장에서 간월산까지 왕복 약 19Km에 2만 8 천보 정도가 소요되었다.
차량에 다시 올라 오후 여정을 위해 출발하였다.
다음의 행선지인 울산 대왕암공원으로 가는 도중 한적한 산림 휴게소에서 맛스런 동치미와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고 목적지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대왕암공원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해안에 있는 공원이다. 울산의 동쪽 끝 해안을 따라 여러 가지 바위들이 있으며 원래는 울기공원이라 불렸다가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공원 입구에서 대왕암까지 가는 약 600m의 산책길은 100년 세월의 아름드리 해송 1만 5천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노랑꽃의 털머위가 우리들을 반기고 있다.
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울기 등대는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설치된 등대로 1906년 처음 불을 밝힌 후 80여 년간 사용되었다 한다. 근대건축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다.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뭉쳐 있다.
불그스레한 바위 색이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하늘로 솟구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교각으로 연결된 나무데크를 따라 탕건암, 용굴(덩덕구디), 할미바위 등 갖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전설 바위 코스는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둘레길이다.
교각의 데크를 따라 가장 높은 바위 위에 다다르니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의 세찬 바닷바람이 몰아친다. 서둘러 인증샷을 남기고 사방을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잠수함이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해안의 둘레길을 따라 멋진 풍광을 즐기며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순조로운 여정과 맛깔난 먹거리를 제공해 준 일행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포항의 대표 음식인 물회를 대접할 요량으로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예전에 여행 중 들러서 맛있게 먹었던 물회 집에 미리 예약을 하니 도착지에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물회와 생선매운탕 그리고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숙소인 범선팬션으로 출발하였다.
범선팬션은 포항 칠포리 해변에 위치한 범선 형태의 모양으로 지어진 숙소이다. 외형의 운치에 비해 내부 편의시설은 낡아 전날의 숙박 펜션보다 불편하였다.
10월 31일 조기 기상한 일행은 2층의 숙소에서 해변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후 동해 해안을 따라 강릉 노추산 모정탑까지 해변 일주를 하기로 하였다.
청명한 날씨에 파란 바다의 파도가 철석 거리며 해변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보라는 시각과 청각과 후각까지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이렇게 해안도로를 즐기는 사이 차량은 삼척 해안의 해신당 공원에 다다랐다.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 민속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 공원에는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 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옛날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초 작업을 위해 총각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처녀를 태워주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돌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파도와 심한 강풍이 불어 처녀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후 이 마을에는 처녀의 원혼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바다를 향해 오줌을 쌌더니 풍어를 이루어 돌아온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 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음력 1. 15), 음력 10월 첫 오일에 남근을 깎아 매달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해신당의 해학적인 조각상들과 해변의 파도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였다.
가는 길에 한적한 농촌의 정자에서 강원도 막걸리를 반주로 한 점심식사를 야유회의 기분으로 즐겼다.
식후 내륙의 도로를 따라 단풍을 감상하며 깊숙한 노추산 모정탑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모정탑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 자락에 있는 돌탑이다.
차순옥 할머니는 결혼한 후 4남매를 두었으나 아들 둘을 잃고 남편은 정신 질환을 앓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40대 중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할머니는 꿈속에 나타난 산신령으로부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강릉 시내에 살던 할머니는 이때부터 돌탑을 쌓을 장소를 찾아다녔다. 1986년 ‘하늘 아래 첫 동네’로 통하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 계곡에 자리를 잡고, 201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26년 동안 돌탑을 쌓았다. 모정탑길 또는 노추산 모정탑길이라고도 한다.
자연석 돌로 원뿔 형태의 돌탑을 쌓았다. 돌탑 길의 거리는 0.9㎞이며, 산책길에 3,000여 개의 돌탑과 방문객들이 쌓아 놓은 크고 작은 돌탑들이 이어져 있다.
한없이 이어지는 돌탑 길을 걷다 보면 돌탑 쌓기 작업을 위해 기거하던 움막집에 다다르게 된다.
겨우 한 사람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나지막하고 조그만 움막집을 보노라면 숙연해진다.
입구에서 출발할 때 무수한 돌탑에 경이로움의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었다. 그러나 움막집을 보고 되돌아 가는 길의 돌탑들은 올 때와 달리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집안의 우환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애틋함과 고뇌가 느껴지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성은 여리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생각을 되뇌며 슈퍼우먼이었던 차순옥 여사의 삶을 기려 본다.
이렇게 2박 3일의 여정을 모두 마친 일행은 귀경길에 대관령 고랭지 농지도 둘러보며 어두워지는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주말의 향락객 차량들로 정체가 극심한 가운데 전용차로를 달려 예정된 20시경에 목적지인 사당역에 무사히 도착하여 해산하였다.
이번 여정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인솔을 해 준 병곤대장과 맛있는 먹거리를 준비한 어부인들 그리고 여정을 함께 즐긴 모든 분들께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여정 때까지 모든 분들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이 지속되시기 바랍니다~!
2020년 11월 1일
가을 여정을 마치며~
신 원 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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