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자년 세모에~! (2020.12.24)
2) 적의 적은 나의 동지~? (2020.12.26)
3) 인생총량의 법칙~! (2020.12.20)
4) 아류의 세상~! (2020.11.30)
5) 검찰총장 '윤석열'~! (2020.11.25)
6) 우리 사회의 '진실성'과 '진정성'~! (2020.11.21)
7) 소천한 부친을 기리며~! (2020.10.20)
8) 강연재 변호사를 생각해 본다~! (2020.10.04)
9) 유체이탈의 세상~! (2020.09.30)
10) 성형유감~! (2020.0926)
11) "딱 한 번만"~! (2020.09.06)
12) 사탄의 정기가 몰려 온다~! (2020.09.05)
13) 목회자보다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필요한 사회~! (2020.09.03)
14) 인공지능 「히포크라테스」의 탄생을 기대하며~! (2020.09.01)
15) 「쿠오 바디스」~? (2020.09.01)
16)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었나~? (2020.08.30)
17) 말세로다~! (2020.08.27)
18) 사이비 목사 전광훈과 광신도들~! (2020.08.21)
19) 쩐의 전쟁~! (2020.08.17)
● 경자년 세모에~!
년초부터 온 지구촌이 팬데믹 코로나 19로 인하여 인적 교류가 끊어진 고립무원의 동토의 세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이로 인한 혼돈과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경자년 말미에 이르러 신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사이래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표정은 알 수 없고 말수도 줄며, 주먹이나 팔꿈치로 악수를 대신하는 요상한 생활의 풍속도가 그려졌다.
또한 원격화상이나 SNS 등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지며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생활이 일상화 되었다. 이리하여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대중을 기피하며 타인들과의 관계 보다도 각자도생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나 또한 1978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모든 송년모임이 취소되어 모임 한 번 없이 년말을 보낸 진기록의 한 해가 되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가고싶은 곳을 가고, 보고싶은 사람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고대합니다.
아쉽고 암울했던 지난 경자년은 흰 쥐와 함께 어둠속으로 보내고,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황소같은 용기로 우리 모두가 기쁨과 희망찬 신축년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 적의 적은 나의 동지~?
흔히 우리는 '나의 적의 적은 나의 동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국가간이나 사적 관계에서도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적이 되는 요인이 분명하지 않고 막연한 적대적 감정으로 적대시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동지였던 '적의 적'을 또다시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지연, 학연, 등의 인맥관계로 형성된 애매모호한 관계의 적대적 감정이 그러한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는 기득권에 대한 변화요구이다.
그 중에서도 사안의 경중과 완급에 따라 민생문제와 더불어 가장 우선순위로 선정된 '검찰개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적의 요인은 '검찰개혁'에 반하는 행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반하는 적과 동지가 되려는 행태가 기득권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촛불시위'로 탄생한 현 정권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을 '검찰개혁'에 반하는 행태로 표출하고 있다.
물론 현 정부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민생문제와 부동산정책 등 국민의 실생활에 고통을 해소하지 못한 미진함이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로인한 불만을 '검찰개혁'에 반하는 적의 동지가 되려는 것은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들의 적과의 동조화로 인해 '검찰개혁'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해당사자인 검찰들의 저항이 예상을 뛰어 넘고 있다.
뿐만이니라 '한 번 검찰은 영원한 검찰이다!' 처럼 검찰 출신의 법조인은 물론이거니와 검찰 출신 여야의원을 막론하고 '검찰개혁'의 저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또한 '국회의원은 순간이고 검찰은 영원하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검찰 출신의 여성변호사가 양심선언과 같은 검찰조직의 문제점과 개혁의 필요성을 책으로 발간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검찰들은 고위직에 승진하여 퇴임 후 그에 걸맞는 전관예우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길 수 있는 검찰조직의 문제점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같이 '검찰개혁'의 과업은 여야가 따로 없다. 야당은 지금처럼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여겨 '검찰개혁'에 반하는 적의 동조행위로 실패한다면 이후 정권 쟁취시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검찰개혁'에 반하는 적의 동지가 되어 또다시 '적의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인생총량의 법칙~!
원자로에서 한 개의 우라늄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185 메가볼트[Mev]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한다.
이는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핵분열 전 후의 질량 차이와 발생 에너지의 총량의 합은 같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계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인생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의 삶, 출생 이후 사망시까지 모든 사람들이 겪는 '오욕칠정의 총량'은 누구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양이 아닌 상대적인 양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의 77억 인구 중 일생을 똑같은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절대적 총량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기만이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같은 시대나 같은 직업을 갖는 이들에게는 부분적으로 같은 환경에서의 공감대를 갖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욕(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을 추구하며 칠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을 표출한다.
이러한 욕구 충족의 크기에 따른 반대 급부의 칠정 또한 그에 비례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옛말에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이란 말이 있다.
따라서 '오유지족'의 일화처럼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 오유지족(吾唯知足)의 일화
옛날에 한 심부름꾼이 상인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 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떼가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몹시 언짢아 하는데, 심부름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심부름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었던 이유가 뭣이었는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에 탐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로 현생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을 한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심부름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다.
그는 '오유지족'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유지족"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이다.
● 아류의 세상~!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
정치, 종교, 언론, 학계, 법조계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분야에서 주류가 아닌 아류들이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순화되지 않은 막말의 정치인, 신의 뜻을 왜곡 전달하는 사이비 종교인, 기득권 집단과 유착되어 이권을 챙기는 언론인, 곡학아세로 세평을 하는 학자, 불합리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법조인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직업윤리가 확고하여 존경을 받는 주류의 상류인생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의 삶에 대한 미련이 있는 듯하다.
이들에게는 이러한 혼돈의 사회가 오히려 노이즈마켓팅으로 자신들의 자격지심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류들의 특성은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이 없이 돈, 권력, 쾌락 만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매사에 국가와 국민 그리고 공정과 정의를 위한다는 말을 앞세워 우리들을 현혹시키며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속된 말로 우리는 이들을 '꾼'이라 부른다.
심하게 말하면 '협작꾼', '사기꾼'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루속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아류의 '꾼'들이 물러나고 직업의 윤리의식이 투철하고 존경받는 주류의 '분'들이 활약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검찰총장 '윤석열'~!
어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에 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진 계기는 2013년 대선개입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었던 여수지청장 윤석열이었다.
당시 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거부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에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법조인으로 생각하였다.
'법과 정의의 여신'이 상징하는 저울의 공정성을 유지하며 공명정대한 '포청천'이기를 모두가 기대하였다.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파격적인 검찰총장에 임명을 받았다.
한편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 의식수준도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해방 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의 권리를 소홀히 하였던 검찰개혁의 요구가 분출하게 되었다.
그도 역시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개혁 대상인 검찰의 수장으로서 검찰조직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고뇌가 읽혀진다.
검찰의 수장으로서 퇴임 후 후배 검사나 법조인들로부터 '기득권을 지켜내지 못한 못난 선배'로 낙인이 두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리하여 사안의 경중과 완급의 분별로서 공정성 저울의 추의 균형을 잃어버린 듯하였다.
검찰개혁의 기치로 출발한 조국 법무부장관에 대한 거부로 그 자녀의 '표창장 위조 건'으로 임명을 반대하였다.
자녀입시 문제는 전 국민의 민감한 정서의 사안이다. 이리하여 한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석하게 하여 결국 법무부장관의 낙마를 이루어 냈다.
낙마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를 소란스럽게 한 것에 비하여 현재의 상황은 '태산명동에 서일필'란 생각이 든다.
어찌하여튼 그 이후에라도 검찰개혁과 법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면 '직무배제'와 같은 불명예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쩔수 없는 가족사의 흑역사로 인해 정의의 여신을 마주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우리 속담에 '남의 눈 속의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의 대들보를 보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되세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모든 공직자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자기관리를 더욱 엄격하게 수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법조계 전문 출입기자와 검사들과의 카르텔 형성으로 언론이 사태를 왜곡 보도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들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로 기자들은 이들로부터 특종의 기사거리를 받고 또한 검사들은 이들의 언플로 인해 출세의 발판으로 삼겠지요~!
그동안 법무부장관은 검사출신 선배로서 공사 구별이 필요 없는 상명하복의 체계로 장관의 심중을 알아서 처리를 하였다.
그러나 검사가 아닌 자가 범무부장관으로 오니 하찮게 여겨 공식적인 행정사무까지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지금까지 누리던 위법적인 행태에 대한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보다 '한 번 검사는 영원한 검사'라는 구호가 어울리는 듯하다.
금태섭의원을 비롯한 여권 내의 검찰 출신 의원들 마져도 이 사안에 대한 견해는 크게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은 순간이고 검사는 영원하다.'는 생각인듯 싶다.
혹시 변협회장도 검사출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법에 앞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우리 사회의 '진실성'과 '진정성'~!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윤리적 가치인 사실 여부의 '진실성'과 의지 여부의 '진정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나도 어느덧 칠순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세월의 열차에 몸과 마음이 실려 있다.
어느새 젊음의 기백과 열정은 시들어 가고, 적대시 하였던 게으름과 편안함을 선호하게 된다.
자기관리에 대한 긴장감도 풀리며 정의감과 윤리의식도 약화되는 조로현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그동안 세태에 찌들어 오염된 탓인지 마음 또한 믿음 보다는 의심하는 비중이 더 커진다.
더구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주위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행태가 생활화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인사도 악수 대신에 격투기 선수처럼 서로가 주먹을 부딪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노화로 인한 자신감 결여인지 서로간의 믿음과 배려 보다는 매사에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된다.
더구나 너 나 할 것 없이 돈, 권력, 쾌락 만을 쫓아 추구하다 보니 세태에 대한 '진실성'이나 '진정성'에 더욱이 의구심이 들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선의의 거짓과 같이 진실성은 없으나 진정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먼저 돈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의 경제적 활동으로 인한 국가의 발전과 경제성장의 기여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들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불합리한 수단과 방법으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탈법적인 부의 승계로 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 진다.
돈과 관련된 행태의 윤리적 가치는 일반인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재물로 인한 부모형제 간의 갈등과 가정불화 문제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화두이다.
뿐만 아니라 돈과 관련 해서는 숭고하고 거룩하게 생각했던 성직자나 무소유를 설파하는 엘리트 승려들 마져도 그들의 삶에 대한 '진실성'과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다음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위정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은 오직 정권쟁취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하기를 바라는 것에 대한 윤리적 가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초현실적인 것처럼 생각된다.
혹자는 이는 마치 권투 선수가 폭력을 안 쓰기나 군인이 살인을 안 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끝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감성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한 감정'인 쾌락은 매우 다양한 종류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는 방법과 종류도 다를 것이다.
스포츠나 취미 활동 등 건전한 쾌락활동을 추구하는 이들에 반해 불건전한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재력가나 위정자나 일반인들 누구라 할 것 없이 불건전한 쾌락을 추구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특히나 유명 재력가나 위정자들과 법조인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 사회가 돈, 권력, 쾌락 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이로 인한 윤리적 가치인 '진실성'과 '진정성'이 도전을 받고 있는 세태이다.
나 또한 이러한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타인에게 이득은 줄 수 없지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살아갈 뿐이다.
재력과 권력을 쟁취하지 못한 나는 쾌락이라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마져도 쉽지 않은 듯하다.
열정이 식은 마음과 성능이 떨어진 몸이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그래도 경직된 몸이지만 중세의 궁중에서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과 경쾌한 비엔나왈츠를 추면서 로맨스에 빠진 쾌락을 꿈꾸어 본다.
비록 '진정성'은 있으나 '진실성'은 없는 나락에 빠질지라도~!
● 소천한 부친을 기리며~!
1925년 4월 30일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신 부친께서 2020년 10월 16일 소천하여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부친의 소싯적 증조부께서 일제의 탄압을 피해 두메산골 덕유산 자락의 무주 안성에 신축 한옥을 지어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우리집을 '새집'이라 불렀다.
전통적 유교사상으로 선비정신이 투철한 증조부께서는 장손인 부친을 매우 아끼고 귀하게 여기셨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으로 부친의 삶의 방식에 증조부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씀을 종종 우리들에게 들려주곤 하셨다.
신문물에 대한 학구열이 높은 증조부께서는 부친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한다. 당시 일본 중학교(현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즈음에 조부(당시 40세)께서 병환으로 위급하여 급거 귀국하여 임종을 맞게 되었다 한다.
장손으로서 가장이 된 부친은 19세의 나이에 초등학교 6학년 담임으로 첫 부임을 받아 교직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6학년 제자들 중에는 기혼자도 있었고, 나이도 부친보다 3세 연하인 학생이 있었다 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당시 부친은 교감이었고, 4학년 경에 교장이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부친은 30대 후반이었으니 장기집권한 교장이 된 셈이다.
이후 65세까지 46년의 교직생활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임하게 되었다.
부친께서 가훈으로 여겼던 '무실역행'과 '인위덕'에 따라 정직•성실•근면을 강조하셨던바 철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아침 식사시간은 긴장상태의 윤리 도덕시간이 되었다. 특히나 '사나이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의와 타협하면 안 된다.'는 말씀까지 강조하셨다.
엄격하고 완고하신 부친의 성품은 우리들 형제에게도 한결같이 부모보다는 교육자 입장에서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부친과 우리 형제간의 관계는 아기자기하고 다정다감한 부자지간의 정보다는 엄격하고 무서운 사제지간의 관계로 평생을 지내왔다.
부친의 일본 유학 동창생으로 유일하게 생존하고 계시고 매스컴에 몇 차례 건강다큐로 소개된 정박사님에 의하면, 부친의 학창시절은 대단하였다 한다. 공부도 잘했고 소설책도 매우 좋아했으며 리더십도 대단하여 당신께서 범접하기 어려웠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부친의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과 글솜씨는 학창시절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새소년'이란 학생잡지에 부친이 기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서도 부친의 카리스마에 눌려 직접 부친께 말을 못 하고 모친에게만 조용히 전달한 기억이 있다.
나는 부친으로부터 야단이나 매를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부친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부친의 카리스마에 눌린 나로서는 감히 이탈된 행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모친 또한 부친의 위신에 누를 끼치는 행실이 있어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사고의 주입이 어린 마음에 세뇌되었다. 따라서 철모르는 어릴 때부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부친의 사고방식에 의문과 반항심이 생기는 사춘기인 고교시절, 부친의 논리에 도전해 보고자 '세계사상전집' 12권과 사서삼경 그리고 원불교성전을 탐독하며 사상무장으로 도전의식을 고취시겼던 적이 있다. 이렇게 용기내어 도전한 나의 논리는 무용지물이 되고 오히려 내가 설득을 당하며, 그 이후로는 줄곧 언행일치를 완벽하게 실천하시는 부친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엄하고 무섭기만 하였던 부친이 구순에 가까워지니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하여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되었던 나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여쭈어봤다.
교육관이 투철한 교육자이신 부친께서 '왜? 평소에도 공부하란 말씀은 안 하시고 일거리만 시키셨는지'가 궁금하였다. 더구나 다음 날이 시험인데도 공부보다는 담배를 엮어 건초작업에 매진하기도 하였다.
부친께서는 가장으로서 2명의 동생들과 8남매의 자식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키고자 박봉의 급여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교육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농작물로 보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당시 남들은 우리를 부잣집이라 말하지만 '시골부자는 일부자' 듯이 2명의 일꾼들과 함께하는 농사일의 업무량은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축들, 소, 염소 5마리, 돼지, 거위, 닭 등 동물농장과 같은 부업의 업무관리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시골에 남아 있는 나의 몫이었다.
여유라고는 느낄 수 없는 억척스런 생활은 내가 고2가 돼서야 농사일이 줄어들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 여유도 잠시 뒤뜰에는 30여 마리의 꽃사슴들이 새로운 일거리로 등장하였다.
이렇듯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의 생활방식은 우리들에게는 '용돈'이란 사치스런 말의 의미도 모르고 자라게 하였다.
부친은 공식적인 출장을 다녀올 시에도 잔여 출장비를 학교에 반납하시는 그야말로 청렴결백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또한 타인에게는 피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철두철미한 생각으로 언제나 당신께서 베풀고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하셨다.
한편 교육철학이 확고하신 부친은 구순을 넘긴 연세에도 명절 때가 되면 시골집에 모인 가족들 중 교직생활을 하는 여동생과 나의 처를 안방에 모아 놓고 교무회의가 이루어지곤 하였다.
교직을 퇴직한 이후에도 구순을 넘길 때까지 유림의 향교 교장으로서 지역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셨다.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 하듯 정정하셨던 부친께서 고령에 의한 원기부족으로 1년이 넘게 요양병원 생활을 하셨다.
평생을 교직자이며 교육자로서의 삶을 이어온 부친께서 비로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저희 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에 태어나 모든 생물이 결실을 맺고 풍요로운 계절에 자연의 품에 안기신 '晩翠'(부친의 호)님의 생전의 삶을 기리며 부디 편안한 영면에 드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20년 10월 20일
불효자 신 원 붕 올림
● 강연재 변호사를 생각해 본다~!
명예 욕구의 좌절감에서 비롯된 분노인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자존심이 무시당해서 일까~?
사회적 가치인 상호성의 부족으로 인한 다름 아닌 틀림의 생각 때문일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정부와 국민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반복적인 분노감정으로 중독성에 의한 신념 때문일까~?
요즈음의 세태에 그녀의 행태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녀도 국민과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존귀한 일원이다.
또한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가 코로나 19로 인한 비상시국에 상식에 어긋난 언행으로 많은 시민들로부터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어 더욱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우리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사이비 목사를 양부라 하며 변호하겠다고 나섰다니 더욱 할 말을 잃게 한다.
물론 변호인으로서 조용히 법정변론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대국민 기자회견을 한답시고 집회가 통제되는 장소에서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도 어느 가정의 자랑스럽고 귀한 딸이며 그 자식의 자랑스럽고 존중받을 부모가 될 강연재 변호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중에 이러한 소중한 가족들로부터 부끄러운 생각이 들게 하는 흑역사에서 하루속히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유체이탈의 세상~!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유명 정치인이라고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다.
자신이 공명정대한 법조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세상이다.
자식이나 가족이 훌륭한 의사라고 자랑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다.
크고 좋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지경이 되었는가~?
이는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를 갖지 못하여 불신의 늪에 빠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되었다.
과연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기회와 과정과 결과를 지키려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솔직히 나를 포함한 대부부의 경우, 보다 좋은 기회를 갖기 위해 변칙을 찾고, 큰 성과를 얻기 위해 과정을 무시하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포장하며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이중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내로남불의 사고가 팽배해졌다.
즉 이는 자신이 행하여 온 불평등과 불공정과 불의를 상대방을 비난이나 공격함으로서 마치 자신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 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칭찬과 자랑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 보며 자기반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사안에 대한 경중과 완급 판단의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이리하여 모든 국민이 이심전심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자랑스런 대한민국이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우리의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 중추절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예전 같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도 풍요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칭찬과 더불어 자랑스런 가족들과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 성형유감~!
언젠가 이마 윗부분에 부처님 이마의 점 같은 흰 지방종이 생성되었다.
5년 전 서울의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 제거수술을 받아 흉터 없이 말끔히 제거되었다.
그후 1년여 지나자 같은 동일한 부위에 같은 형태로 서서히 재발하여 지금은 수술당시와 같은 크기(5mm정도)가 되었다.
다시 찾아 뵌 교수님께서 "먼 곳에서 자주 오기가 번거로우니 집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제거수술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 하신다.
2016년 1월 서울서 이곳 청라로 이사하였다.
다니던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이리하여 이상지질증(고지혈)로 3개월 마다 진료를 받고 있는 거주지 가까운 대학병원의 성형외과에 진료예약을 하였다.
3개월 마다 하는 내과의 공복 채혈검사 후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사이에 예약된 성형외과를 방문하였다.
성형외과 외래환자 대기실는 번잡한 내과외래와 달리 한산한 상태로 나홀로 대기상태였다. 진료개시까지 한동안 기다린 후 담당교수님께 진료를 보았다.
담당 교수님께 "5년 전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지방종으로 제거수술 받은 부분이 재발되어 교수님께 시술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말과 이곳으로 오게된 사유를 말씀드렸다.
별 말씀없이 알겠다는 말과 함께 이마 부위를 살펴 본 후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와 상담을 하였다.
시술 전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우선 초음파검사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에 "5년 전 조직검사 상 지방종으로 확인되었는데 별도 검사가 필요합니까?"란 나의 질문에 "재발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조직일 수 있어 검사를 해야 합니다."라 하였다.
"그러면 제거시술 후 조직검사를 하면 안되겠습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우리의 절차상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라 한다.
"그러면 초음파 검사비는 얼마나 됩니까?"란 질문에 "18만원입니다."라 한다.
"에~? 그렇게 비싸요~?, 2~3만원도 아니고~!"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고 시술여부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씁쓸한 마음으로 원무과 수납창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또한 수납한 초진료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채혈검사 결과와 처방을 받기 위해 내과를 들렀다.
내과 교수님께서 "검사결과가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대로만 하면 좋아질 것입니다." 라며, "다음 번(3개월 후)에는 검사는 생략하고 약 처방만 받으시는게 어떨지요~?"라 하신다.
이에 " 교수님! 그래도 변동사황은 알고 싶은데 검사처방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셨다.
환자의 부담을 줄여 주려는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조금 전 성형외과에서 느낀 찝찝한 마음이 사라지고 미소가 떠오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고 복이다.'라는 말이 오늘 따라 더욱 뇌리에 스친다.
● "딱 한 번만"~!
누구나 한 번쯤은 "딱 한 번만"이란 생각을 해봄직하였을 것이다.
이는 복권당첨을 바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7전8기를 노리는 정치인의 당선, 청탁 의뢰인, 도덕적 윤리적으로 청렴결백한 사람의 큰 이권을부터의 유혹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청탁일 수도 있고,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도 있고,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불법이나 비리는 "딱 한 번만"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딱 한 번만"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첫번째가 어렵다. 이 첫 번의 "딱 한 번만"이 되는 순간, 스스로 지켜야 될 그 규범의 기준은 낮아지거나 소멸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욕망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이타적이 아닌 이기적 욕망이 절제의 탄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이미 오염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힘(권력, 재력, 지력)에 따라 그로 인한 타인이나 사회적 피해 규모는 그의 영향력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고위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리키는 '노블리스오브리제'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함에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인성을 중요시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의 품성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격의 소유자는 '노블리스오브리제'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여 반 사회적인 행태를 행할 우려가 높다.
이들의 잘못된 의지와 갈망과 목적과 감정에 의한 "딱 한 번만"의 행태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자칫 우리사회를 혼란스러운 파국으로 몰고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딱 한 번만"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경각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사탄의 정기가 몰려 온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해 원죄의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아온 인생이다.
요즈음 이러한 죄의식에 희망의 빛이 보인다.
그동안 지옥행 1순위로 두려움 속에 살았다.
허나 요즘 세태의 주역들로 인해 순위가 후순위로 밀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이리하여 마치 면죄부를 받아 남은 여생을 일탈된 생활로 살아가도 무방할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밀린 순위를 세어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 같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기야 요즘에는 지옥에 가려해도 너무 많이 밀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천당으로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나를 지옥행 후순위로 만들어 준 고마운 분들을 손꼽아 보자.
우선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한 목회자와 분별력 없는 그 신도들이다. 이어서 국민의 뜻을 받아 옳바른 정치를 하지 않는 위선적인 위정자들이다.
또한 역병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내팽개치고 진료현장을 이탈하여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한 의료인들이다. 더하여 공명정대의 저울을 내팽개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법조인들 또한 나를 기쁘게 해 준다.
이외에도 권력과 재력과 지력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갑질하며 고통을 주는 수 많은 인면수심의 양심불량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부디 지옥에서 개과천선하여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 목회자보다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필요한 사회~!
요즈음 우리 사회는 혼돈의 사회이다.
코로나 19의 역병이 다시 창궐하여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 우리 사회를 진정시키고 역병을 퇴치하여야 할 목회자와 의료인들이 혼란을 부추겨 우리 사회가 패닉상태이다.
그동안 선량한 시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거룩하고 깨끗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설파하며 대중에게 추앙받던 목회자들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을 상대로 하는 의료인 또한 직업윤리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보수의 서약없이 가르쳐 주고, 순수하고 경건한 삶을 유지하겠다는 맹세를 한 의료인이다.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소위 '지성인'이라 일컫는 이들의 일탈행위로 인한 사회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에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더 나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나침판이 절실한 시기이다.
지금까지 수면아래 잠재되 있던 우리나라 개신교의 문제점들이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표면화 되었을 뿐이다. 즉 종교의 정치개입 문제, 권력과 돈의 유착관계로 인한 교단창설과 교회세습 문제 등 각 종 비리가 노출되었다.
이러한 누적된 문제점의 해결을 개신교 자체 정화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종교단체의 원로들에 의한 문제해결이 바람직하나 이 또한 종교의 특성상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자와 목회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현 상항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해소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함에 순수한 학자들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종교학자를 비롯한 사회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요구된다.
이들에 의해 우리 국가가 건전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바람직한 종교의 역할을 재정립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에 더하여 오피니언 리더들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에 관한 설정도 요구된다.
끝으로 시민들 입장에서 종교에 임하는 자세와 오피니언 리더의 행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처방을 제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인공지능 「히포크라테스」의 탄생을 기대하며~!
요즈음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재확산으로 인한 방역방침에 따라 모든 사회활동의 제약이 강화되었다. 이리하여 서민들의 생계활동과 청소년들의 학습활동 등 혹독한 어려움과 불편을 겪게 되었다.
년초부터 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팬데믹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의료인들과 방역관계자들의 고군분투 속에 선방을 하여 왔다.
하지만 근래에 다시 폭발적인 확산은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정부는 전염병이나 질병을 관리하기 위한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해 부족한 의료인력 증원방안을 발표하였다.
허나 의료인들은 기득권 지키기에 나섰다.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재확산의 비상시국에 방역활동에 전력을 쏟아 대처를 해도 어려울 지경이다. 더구나 의료인들이 돌보던 환자들 마져 방치한 채 진료현장을 떠나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져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이다.
이로인해 그동안 쌓아 온 우리 사회의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인 윤리적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져버리게 되었다. 또한 이를 지켜본 서민들은 이들의 의술이 인술이 아닌 상술의 도구와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전의 슈바이처나 고 이태석 신부가 현재의 이들 보다 월등한 의술을 지니고 있어서 대중으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의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오늘날 세계인들로부터 의료인으로 바람직한 삶에 대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료인들이 이번 사태로 실종된 고결하고 숭고한 권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향후에 더 많은 노력과 헌신이 요구될 것이다.
얼마전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였던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으로 인간의 바둑계를 평정한 뒤 무적의 위업을 달성하고 물러나 있다.
이왕지사 정부는 빅데이터의 의료기술을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가칭'히포크라테스'라 칭함)을 개발하여 의료인 개인의 의술편차에 의한 오진을 줄이고 의료취약지역의 의료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는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적정의료수가 산정에도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등장은 전염병과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더 나가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된다.
<댓글>
진료행위의 대부분이 질환을 발견하고 확진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검사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모든 검사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의사 개개인의 지식한계로 인한 오진을 줄이고 시간을 현격히 단축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내과적인 문제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부분이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과적인 방법도 환자의 상태에 따른 최적의 방법을 제시하고 더하여 최신의 수술기법을 제공하여 진료의 수준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히포크라테스' 의 등장은 '알파고'처럼 인류의 최고의 명의가 탄생할 것이다.
● 「쿠오 바디스」~?
▷주께서는 목사에게 성령의 권능을 위임하셨습니까~?
병자를 고쳐주던 주와 달리 이들로 하여금 혹세무민하여 순진했던 신도들을 맹인과 귀먹어리와 벙어리로 만들어 사리분별 못하는 심리장애자가 되도록 하셨습니까~?
더구나 이들의 신도들로 하여금 코로나 19 저주의 전령이 되어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하는 사탄이 되도록 하셨습니까~?
또한 이들에게 젊은 여신도의 성 헌납으로 천국의 길을 열어주도록 하셨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목사에게 정권취득을 명하셨습니까~?
이들에게 정치적 야합으로 일제강점기부터 군부 쿠테타세력까지 정권과 결탁하여 한국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이라는 정치적 집단을 결성하도록 하셨습니까~?
또한 이들을 돈과 권력에 집착하여 그 크기에 따른 계층을 형성하여 사회적 위화감과 갈등을 조장하도록 하셨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목사에게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설하여 세습하도록 하셨습니까~?
주님을 치졸한 하나님이나 늘 돈을 요구하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그 헌금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만들어 그들의 혈족에게 세습하도록 하셨습니까~?
또한 그 웅장한 성전은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 만의 사교장이 되어 실상 가난한 자를 하나님과 단절시키는 비 복음적인 천민자본주의 기독교로 만들라 하셨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전지전능하신 성령으로 이들을 옳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었나~?
서슬이 퍼런 권력을 휘두르던 위정자들이 범법자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범법자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대처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던 목회자들이 지금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하여 계율을 어기며 예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종전에 의료종사자 파업을 백안시 하고 용공분자로 보던 의료인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파업을 하고 있다.
'공명정대'의 저울을 들고 있던 법조인들이 그 저울 위에 올라갈 처지가 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욕망으로 인한 사리분별이 흐려져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누구 보다도 거대한 사회적인 힘(권력, 지력, 재력)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은 힘을 갖기 위해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을 볼모로 갑질을 하고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했다.
본인들의 이권놀음에 서민경제는 파탄나고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게 된다.
선량한 시민들을 막가는 인생으로 내몰지 말라. 이들이 이판사판의 생각을 갖게 되면 그 누구도 우리 사회와 국가를 지킬 수 없다.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본인들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말세로다~!
지금 대한민국이 정상인가~?
사이비 교주가 난무하여 그들을 따르는 광신도들은 심리장애가 되어 사리분별력이 마비상태이다.
신천지와 사랑교로 인한 가정파탄과 국가파괴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면을 쓰고 재물과 권력을 목적으로 혹세무민하고 있다.
이들 교주에 홀린 광신도들은 사탄이 되어 전국 곳곳에 숨어 들어 선량한 시민들에게 코로나 19의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한편 이들 사탄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퇴마사인 의료인들 마져 국가의 퇴마사 증원중단과 퇴마비 인상을 요구하며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협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처럼 모든 국민에게 권총을 허리에 둘러매게 하여 사회정의 개념을 다시 세워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가나 사회의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각 자의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하는 사이비 교주나 퇴마사들의 행태는 국민의 눈에는 오십보 백보이다.
이러한 말세의 세상에서 진정한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원할 뿐이다~!
● 사이비 목사 전광훈과 광신도들~!
요즈음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와 그 신도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위태롭다.
이들의 테러에 가까운 행태로 사회활동을 마비시키고 있다.
정부의 방역방침에 대한 비협조 뿐만아니라 오히려 조롱까지 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선거에서 낙선하여 심리장애 상태인 전직 국회의원들까지 사리분별이 어두어 그들에 가세하여 더욱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불철주야 노력해 온 방역활동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 19의 전국적인 확산은 향후 10인 이상의 집단활동 금지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중소 상공인들의 경제활동과 청소년들의 학습활동 등 모든 분야의 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정상적인 종교계의 성직자분들께서는 위와 같은 사이비교에 대한 입장과 정화작업 계획을 단호하게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선량한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정부는 종교탄압이라는 호도를 의식해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의 방역방침에 반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직접비용 뿐만아니라 간접비용의 손실에 대한 구상권을 반드시 청구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정부는 이러한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에 대하여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여 우리 사회의 혼란으로부터 안전을 지켜주기 바란다.
● 쩐의 전쟁~!
우리 사회는 권위없는 권력사회가 되었다.
권위를 중시 여기는 위정자나 성직자 그리고 법조인과 의료인들 마져도 쩐의 전쟁에 휘말려 우리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대통령 취임사 중)이라는 기치로 출범한 정부의 핵심 요인들이 정책에 반하는 위선적인 행태로 불신을 초래하였다.
선량한 서민을 위한 입법활동을 하는 위선적인 의원들에게 본인들의 이익(다주택)에 반하는 대책이 지속되기를 기대하기란 무리일 것이다.
거룩하고 성스러워야 할 성직자들이 방역방침에 반하는 집단예배나 대규모 정치집회로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공명정대'하여야할 법조인들 또한 사안의 경중과 완급의 균형을 잃어 권위가 실추되었다. 더구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행태와 부당한 재력에 의존한 혼인관계는 그 도덕성의 권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미는 퇴색되고 집단 이기주의에 편승하여 파업행렬을 이어가는 의료인들 또한 쩐의 전쟁에 열중이다.
이러한 권위없는 권력사회는 모든 것이 쩐을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불안이 가중되는 현 시국에 조속히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권위있는 사회가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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