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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뚜껑 아트~!

by 신원붕 2020. 10. 14.

 

"병뚜껑으로 만든 스포츠 작품들, 기쁨과 위로, 용기 주기를" 병뚜껑 아티스트 정원 체육교사의 소망

입력2020.06.22. 오전 9:00

수정2020.06.22. 오전 9:27

김세훈 기자

 

스포츠경향 김세훈 기자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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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쓰쓰쓰….”

귀에는 그에게만 들리는 불편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그 소리는 잠자기 전에 더욱 크게 들린다.

이명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작년 겨울밤. 그는 병뚜껑을 만지작거렸다. 가위로 오리고 펜치로 구부리면서 한참 동안 꼼지작꼼지작. 그렇게 별도 만들고 하트도 만들었다.

“소주 병뚜껑 10개로 이것저것을 만들어 늘어놓았더니 귀엽고 예뻤다.”

그렇게 그는 병뚜껑으로 더 많은 걸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숱한 추억에 얽힌 다양한 스포츠 동작을 만들었고 지금은 사람 옆얼굴을 제작하는 재미에 빠졌다. 그렇게 반년 넘게 만든 병뚜껑 작품이 500점을 넘겼다. 집 한 곁에 아내가 마련해준 작업실 내 장식장에 류현진, 손흥민, 마이클 잭슨, 미스터 트롯, 그가 사랑하는 지인들 얼굴도 자리했다.

“병뚜껑 작품을 만들 때에는 이상하게도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정원 명일여자고등학교 체육 교사(56)가 소주 병뚜껑을 이리 오리고 저리 꺾으며 꼼지락거리고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정 교사가 병뚜껑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한 건 3년 전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비롯됐다. “후배가 소주 병뚜껑으로 하트를 만들어줬는데 귀엽고 예뻤다. 나도 만들어봤는데 처음에는 너무 엉성했다.”

정 교사는 손재주가 있었다. 중학교 때 미술부에서 활동했고 서예도 배웠다. 어머니는 동양화가였고 형도 미술대학교를 다녔다. 미술가 피를 받았는지 병뚜껑으로 몇 개 만들다 보니 능숙해졌다. 거의 2년 동안 병뚜껑으로 별, 하트, 회사 로고 등을 만들었다. 미술 교사 아내가 준 도안집에 나온 도형을 모두 만드는 사이 기술도 늘었다. 어쨌든 그때도 병뚜껑을 오리고 구부려서 뭔가를 만드는 건 심심풀이였다.

작년 말. 병이 찾아왔다. 이명이었다. “쓰쓰쓰쓰…” 끊임없이 들렸다. 의사는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만 줄 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이 늘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병뚜껑은 과거 병뚜껑과 달랐다.

“체육 전공자로 다양한 종목을 병뚜껑으로 표현해보자.”

수영, 육상, 체조 등 기초 종목을 비롯해 축구, 야구, 골프 등 인기 구기 종목 형상을 만들었다. 피겨스케이팅, 스켈레톤 등 빙상종목도 가미됐고 당구, 테니스, 볼링, 하키 동작도 추가됐다. 태권도, 댄스스포츠, 바이크, 자전거도 만들었다. 김연아의 우아한 점프, 손흥민과 우사인 볼트의 세리머니까지 제작했다. 다양한 색깔 병뚜껑으로 2인1조 작품도 만들었다. 후프 등 특별한 기구를 빼놓고는 병뚜껑 꼬투리 한개만 썼다.

“스포츠 전공자라서 그런지, 사진만 봐도 동작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도안을 손으로 그리지 않고 머리로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들고 있다. 웬만한 스포츠 동작 작품은 20~30분이면 만들 수 있다.”

그는 똑같은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 병뚜껑으로 작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더 많은 소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몇 개를 만들겠다, 어디까지 만들어 보겠다는 등 가시적 목표는 없다.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만들 뿐이다.

지금 그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사람 옆얼굴이다. “스포츠 동작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사람 얼굴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각도, 길이가 조금만 달라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병뚜껑을 뜯고 남은 동그란 모양 꼬투리를 길게 편다. 옆얼굴 사진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어디까지 턱, 코라인을 만들지, 안경과 머리카락은 어떻게 표현할지, 귀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그렇게 하려면 꼬투리의 어느 부분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꺾고 자를지 등을 구상한다. 턱부터 만들기 시작해 코 근처 라인까지 잘 빠지면 사실상 성공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 얼굴을 만들려면 2~10시간이 소요된다. 꼬투리를 4가닥 이상으로 잘라야 할 때도 있다. 자칫 똑 부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마이클 잭슨, 손흥민, 류현진 얼굴을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도 제작했고 최근에는 미스터 트롯 멤버 얼굴도 선보였다. 몇몇 지인들의 얼굴도 물론 제작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건 고통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만들고 싶은 사람만 만들 뿐 누가 만들어달라고 해도 안 만든다.” 그가 얼굴을 만든 사람은 친한 지인이라는 증표를 받은 셈이다. 그는 “스포츠 동작이든, 얼굴이든, 물건이든 거기에 과거 이야기를 담는다”며 “추억이 더해진 작품은 더 깊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소주 병뚜껑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구하기 쉽다. 정 교사는 “골프를 칠 몸과 술을 이길 장기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애주가다. 그는 “참이슬 뚜껑이 경쟁사 뚜껑에 비해 더 단단한 데다, 빨간색 등 다른 색깔 뚜껑도 나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며 “나는 매번 참이슬을 주문하고 병뚜껑은 모아 가져온다”고 말했다. 소주 병뚜껑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추억을 때로는 쓰게, 때로는 달게, 때로는 밍밍하게 만드는 게 술이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좋든 아프든 추억이 술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며 “추억이 녹아든 소주 병뚜껑 작품이 사람들에게 기쁨, 희망, 용기, 가능성, 치유를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 교사 작품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정 교사는 특별한 날짜에 맞춰 온라인으로 많은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회가 생긴다면 오프라인 전시회도 개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좋아해서 만든 작품을 보고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다양한 병뚜껑 작품을 통해 추억을 공유하고 그게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병뚜껑을 만지작거리고 꼼지락거리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함께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얼마 후 작품을 보면서 추억에 잠시 빠져 살포시 웃을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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