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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경기둘레길

경기둘레길 39코스: 광천마을~칠장사

by 신원붕 2024. 2. 17.

작년 화재가 난 터

 

○ 경기둘레길 39코스 : 광천마을 정류장~칠장사

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으로 흐르는 길

삼대를 이어 효자효부를 배출했다는 현풍곽씨 충효각이 시작점이다. 이천과 안성 경계부터 동행한 영남길은 여전히 같이 간다. 널찍한 언덕 경작지 너머로 십자가가 달린 독특한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천주교 죽산성지다. 조선 말 천주교 병인박해 때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곳이다. 영남길과는 이곳에서 헤어진다. 낚시 좌대가 그림 같은 용설호수를 지나면 산길 구간이다. 칠장산 정상을 앞두고 칠장사로 내려와 마무리한다. (출처: 경기둘레길)

 

작년 12월 7일 경기둘레길 38코스를 마치고 동절기의 한파로 보류하였던 둘레길 이어걷기를 하기 위해 오늘(2월 16일) 집을 나섰다.

둘레길 39코스의 출발지인 일죽 광천마을정류소로 향하기 위해 이른 아침 당산역 첫차(5:30)를 타고 일정상 동부터미널의 일죽(첫차:9:10시)이 아닌 남부터미널에서 죽산 버스터미널행 첫차(6:10시)를 아슬아슬하게 탑승하여 약 1시간 10분 후 죽산에 도착하였다.

버스터미널 주변의 식당에서 아침식사(김치찌개)를 마치고 택시를 이용하여 광천마을정류소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다.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시기이나 일교차가 심한 영하 3도의 아침 기온이다.

후드점퍼의 모자를 둘러쓰고 출발하였다. 정류소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자 ‘임경업장군’ 해설 표지판과 삼대를 이어온 효자 가문 ‘현풍 곽씨’의 충효각을 만난다.

큰 돌들로 가득한 지역이라는 ‘장암리’ 마을의 농로로 들어서니 널따란 논과 축사들이 곳곳에 보이며 한동안 축사의 분뇨냄새가 농로를 벗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농로를 지나 금망아지골 며느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갓바위’를 지난다.

갓바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데, 금망아지골 부자집의 며느리가 손님을 대접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이 집에 시주를 하러 찾아왔는데 며느리는 스님을 열심히 대접하고 하루를 묵게 했답니다. 스님은 고마움을 표하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며느리는 자기 손에 물이 마르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더니 스님께서 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바위 위의 갓모양이 이 집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주인에게 ‘저 바위의 갓이 재앙의 씨앗이니, 갓을 떼어 땅에 묻으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갓모양의 바위가 사라지고 나니 집이 망해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 며느리의 손에 물이 말랐다고 한다. 미담이 아닌 씁씁한 이야기로 교훈을 주는 듯하기도 하다.

이어지는 길은 중부고속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 걷다보면 순교성지인 '죽산성지’에 이른다. 죽산성지는 순교자의 무덤이라는 곳으로 좌우 끝으로 대나무를 형상화한 현암비가 세워져 있고 중앙에 무명 순교자의 묘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가슴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성지를 두루 둘러본 후 다시 걷는 길은 고목의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곁에 둔 종배마을회관을 지난다.

길은 죽산천으로 흘러드는 천을 따라 한동안 용설호수길을 걷다가 안성시 다목적 야영장 앞을 지나 용설호 산책로로 들어선다.

잔잔한 호수에는 천둥오리와 겨울철새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호수 건너편 남산의 상부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어 허연 모습으로 호수 면에 비친다. 펜션 모양의 수상의 낚시터도 호수주변의 펜션들과 야외캠프장과 어울려 눈길을 끈다.

호수 산책로를 벗어날 쯤 솟아오른 햇살로 남산의 설경이 흐려지며,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는 숲길을 만나게 되어 배낭에 묶어 두었던 등산스틱을 장착하였다.

이어지는 길은 당목리 목동마을길을 지나 한겨레고등학교 앞을 지나 칠장리로 들어서며 칠현산(516.4m)과 제비월산(294.4m) 사이 계곡 길을 걸어 오르며 목적지인 칠장산 아래 칠장사에 이르게 된다.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라고 한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라 한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2023년 11월 29일 칠장사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 화재로 자승스님(69)이 입적했다는 곳은 공터로 남아 있었다.

사찰 관계자에게 화재 장소를 문의 하니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위치를 알려준다. 범인의 처지에서 소중한 문화재 소실에 대한 안타까운 스님의 처사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나의 말에 관계자는 미소를 지으며 답을 대신한다.

칠장사 입구의 산직동 마을회관 뜰에서 배낭속의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 잔 후 40코스의 둘레길을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