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여행을 다녀와서~
2019년 동창(중) 해외여행이 지난 5월 크루즈여행으로 6박7일 일정으로 시행되었다.
그동안 매번 20여명 이상의 친구들과 함께 하였던 해외여행과는 달리 소수의 친구들만 참여하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리하여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으로 다시 코타키나발루를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3박5일 일정으로 추진하였다.
촉박한 추진 일정으로 인하여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없게 되어 이번에는 11명의 친구들이 동행하게 되었다.
쌀쌀한 날씨로 몸이 움츠리게 되는 11월에 적도 부근의 보르네오섬 코타키나발루에서 따사로운 햇살의 해수욕을 즐기는 것을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11월 20일 공항집결시각 오후 5시, 전주에서 출발한 3명의 친구들의 마지막 합류로 탑승권을 발부받아 수화물을 보내고 출국 게이트로 발길을 옮겼다.
저가항공의 특성상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하여 여행사 친구가 제공한 간식거리를 나누어 갖고 면세구역 식당에서 든든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탑승하였다.
출발예정시각 19:50시, 제주항공 7C2507편에 몸을 싣고 출발한 여객기는 5시간 반여 비행 후 한국보다 1시간 늦은 시차의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새벽 1시경에 도착하였다.
우리 팀을 인솔할 현지 가이드, 잭(김진현)의 안내로 공항에서 멀지 않는 시내에 위치한 르 메르디앙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아 새벽 2시경의 늦은 시각에 입실하였다. 호텔의 시설은 청결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었다. 투숙객의 안전을 위해 객실의 키카드를 소지하여야 엘리베이터를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12층에 배정받은 우리는 여장을 풀고 샤워를 마친 후 뒤 늦게 욕실 시설물(변기)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풀었던 짐을 다시 챙겨 13층으로 방을 옮기고 나니 새벽 4시 반경에야 취침에 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그렇듯이 평소에는 무관심하던 나라나 지역이라도 여행 방문지로 들어서게 되면 그 지역의 특성과 생활환경들에 관해 궁금증과 함께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궁금증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현지 가이드의 해설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방문한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북지역의 사바 주 믈라카 해협 연안에 위치한 면적 303㎢, 인구 45만 여명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코타(도시,요새의 뜻)’ ‘키나발루(동남아 최고봉:4095m의 산)’의 의미로 코타키나발루는 ‘키나발루산의 요새’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의 11월 평균 날씨는 최저기온 24 °C, 최고기온 31 °C, 평균 강수량 302mm 정도 된다고 한다. 보루네오섬은 세계 3번째로 큰 섬으로 “지구의 허파”라 불리우는 열대 우림지역이다. 이 섬은 인도네시아령·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와 브루나이로 나뉜다.
한때 섬 전체를 지배했던 브루나이 술탄국은 19세기경에는 북부와 북서 지역만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사라와크는 남서쪽에서 분리하여 독립왕국이 되었다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한다. 사라와크와 사바를 잃음으로써 브루나이는 매우 약화되어 마침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42년 일본인들의 침략으로 이름뿐이던 영국·네덜란드 군대가 철수했으나 1945년 재탈환되었다고 한다.
1949년 네덜란드령 보르네오의 주권이 인도네시아로 넘어갔고 다음해 새 헌법에 의해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영토로 선언되었다. 사바와 영국정부가 주권행사를 포기한 1963년 곧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브루나이는 일본인들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1888~1983년 영국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1984년 1월 완전히 독립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보르네오섬(동말레이시아)에 있다.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11월 21일, 6:30시 알람의 울림에 깨어나 샤워를 마치고 통유리로 된 창밖을 보니 구름이 드리워진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화창한 날씨와 다른 일기에 실망과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출발시각이 가까워지자 점점 그치는 몇 방울의 비가 안도감을 주었다. 이로인해 스콜현상의 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첫날 여정인 툰구압둘라만 해양국립공원 아일랜드 투어를 위해 호텔조식을 마친 우리는 9시에 이동버스에 올랐다. 늦은 새벽에 잠자리에 든 나는 취침부족으로 충혈된 눈으로 버스에 올라 앉으니 하품까지 나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제셀톤 선착장까지 10여분의 차량이동 후 하차하여 구명조끼를 입고서 가야섬 가야해변으로 향하는 쾌속정에 올랐다. 선착장에서 약 1Km 거리의 가야해변까지 10여분에 걸친 해상 드라이브는 맑은 바다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파도 물결 위를 롤러코스트처럼 튕겨 오르는 몸을 가누느라 집중하는 사이 취침부족으로 졸렸던 몸과 마음이 말끔한 상태가 되어 해변에 다다르게 되었다. 출발 시 보였던 가야섬 주변의 수상가옥 밀집지역과 달리 인적이 없는 가야해변은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모래해변과 거목의 나무들이 드리워낸 시원한 그늘과 맑은 공기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이었다.
그늘에 놓인 식탁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각 자 원하는 해양스포츠(패러세일링,스노클링,씨워킹 등)를 선택하여 즐기게 되었다. 친구들 중 몇몇은 씨워킹을 선택하였고 나는 해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수심이 얕은 해변가를 둘러 보기로 하였다.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의 햇볕에 데워진 미지근한 바닷물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심이 얕은 해변이라 다양하고 많은 열대어는 볼 수는 없었지만 경계선이 드리워진 깊이에 다다르자 갑자기 내 종아리를 쪼아대는 느낌이 들어 수경을 통해 들어다 보니 손바닥 만한 물고기가 자기 영역을 침범한 나를 향해 공격을 하고 있었다. 겁 없이 도망가지 않고 공격하는 물고기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좀 더 옆으로 이동하여 돌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들어다 보니 수족관에서 보았던 말미잘과 알록달록한 흰동가리가 노닐고 있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해변의 스노클링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야외에 마련된 뷔페식 식단으로 요기를 하였다. 이슬람 문화권의 특성으로 우리가 즐겨 먹는 돼지고기류는 접할 수 없고 닭고기로 요리된 꼬치구이나 찜을 흔하게 맛볼 수 있었다.
식 후 사용한 접시와 잔반을 반납하는 곳에 이르자 괴성을 지르며 음식물을 노리는 야생 원숭이와 막대기를 들고 이를 지키려는 현지인 간의 기싸움이 한창이었다. 한편 뒷쪽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야생 멧돼지들이 음식 내음을 맡고 찾아들어 주위를 서성이고 바로 옆에는 커다란 코모도 도마뱀까지 어슬렁거리며 긴장감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 현지 직원들은 조심하라는 말 이외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였다. 이들 야생원숭이들은 관광객들의 소지품을 갖고 밀림으로 가는 경우가 있으니 모든 짐은 테이블 밑에 마련된 바구니에 반드시 보관하여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있었다. 이곳 해변에 들어설 때 가졌던 멋진 낙원에서 몇 일간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 이들 위험한 야생동물을 만나고 보니 해가 저물기 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휴양해변에서 오감만족의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가기위해 쾌속정에 올라 다시 한번 파도를 가르며 선착장으로 향했다.
호텔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가이드가 소개한 규모가 큰 씨푸드 음식점에 들어 섰다. 원탁테이블에 차려진 푸짐하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맥주와 소주를 겻들여며 모두가 마음껏 즐겼다. 고맙게도 적지 않은 식비를 이정만회장이 지불하였다.
저녁만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친구들은 샤워를 마치고 이회장과 함께 묵고 있는 우리 숙소로 집결하였다. 각자 가지고 온 소주와 간식거리를 다 함께 즐기며 쾌청한 날씨에 즐거웠던 하루의 뒷풀이와 담소를 나누었다. 원회장이 면세점에서 구입한 2병의 발렌타인까지 비우며 재미있고 즐겁고 또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우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을 갖었다. 아쉽게도 나는 전날 저녁의 취침부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잠시 누워있는 사이에 잠결에 빠져들었다.
11월 22일 오전 10시, 숙면을 취한 우리는 호텔조식을 마치고 맹글로브투어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숙소로부터 해변을 따라 동북쪽으로 약 35Km 거리, 50여분이 소요되는 맹글로브강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이드 잭으로부터 말레이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한 다양한 해설을 들으며 간단한 말레이시아 말도 배웠다.
가이드에 의하면 반도와 보르네오섬으로 이루어진 말레이시아는 오래 전부터 서구의 다양한 국가들로부터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180년간 영국의 신탁통치를 받았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인 군주(국왕)은 9개 주에 있는 술탄왕에 의하여 5년에 한 번씩 호선으로 선출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사바 주의 주지사는 선출제로 시행된다고 한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교는 이슬람교(62%)이지만, 카톨릭, 불교, 힌두교 등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한다.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두루고 있지만 이를 입지 않는 여성들도 많이 보였다. 종교법에 따라 태형이 시행되고 있으며 시민들의 도덕성은 매우 높다고 한다. 가야섬에서 돌아오는 쾌속정에서 정총무의 핸드폰 분실 때 오래되지 않아 되찾은 사례에서도 그들의 도덕성을 알 수 있었다.
종교의 영향으로 1부4처제가 인정되지만 평등의 원칙에 따라 모든 부인에게 동등하게 처우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첫째 부인의 허락 하에 둘째 부인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신랑은 신부에게 지참금을 지급하고 신부는 신랑에게 사포닌 성분이 인삼보다 30배나 많이 함유되 있다고 하는 ‘신의 지팡이’로 불리는 ‘통캇 알리’의 뿌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보르네오섬의 동말레이시아는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해양성기후로 하루에도 몇 차례 국지성 스콜이 발생한다. 청정한 지역에서 내리는 맑은 비는 우산이 없는 주민들은 그냥 비를 맞으며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많은 비가 내리는 도로 주변의 우수처리 시설이 미진하여 도로가에 또랑 같은 배수로와 뚜껑 없는 맨홀을 주의하라는 가이드의 당부가 있었다.
인종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30%의 중국계가 70%의 상권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정책들이 이 땅의 자손이라는 부미푸트라(말레이인 또는 말레이시아 내 원주민/토착민)를 우선시 하는 고용, 교육, 주택구입 등에 우선권을 갖는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원칙적으로 이민제도가 없으며,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거주해야하며, 일정 금액 이상의 재정조건(단수비자=1억2천만원)을 충족할 수 있는 주택(2억5천만원)을 구입 시 거주할 수 있다고 한다.
자원이 풍부한 말레이시아는 주로 주석, 팜유, 석유를 생산. 수출하며, 특히 팜유는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이를 대체연료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휘발류 등 연료비와 전기료가 매우 저렴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바주는 자연보호를 위한 툰무시타법으로 공장이 없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자동차 생산국 18개국 중의 하나라 한다. 코타기나발루 시내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우리와 달리 우측주행하고 있었으나 한국산 차량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차량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 차 값 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이기 때문이라 한다. 코타키나발루 시민의 가구당 2.6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이동하는 차량 속에서 가이드의 해설은 말레이시아의 다양성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말레이시아어는 세계 7대 언어로서 32개 부족이 72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깊은 외지를 방문 시에는 현지인들도 또다른 통역요원이 필요하다고 한다는 말에 우리의 한글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느끼게 된다.
가이드가 알려준 간단한 현지어, “아빠까바르”(안녕하세요?),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를 익혔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 중 ‘오랑(사람)우탄(숲)’, 람부탄(머리카락)과일들의 의미도 알려 주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창밖의 경관을 바라보며 가이드의 해설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인 맹그로브 강변에 다다랐다. 강 건너 라야라야 해변으로 향하기 위해 땟목 처럼 목재로 만들어진 바지선을 타고 강을 건넜다. 이 곳 넓다란 야외식당으로 향하는 도중 미모의 말레이시아 여인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이고 나무기둥 위 지붕은 목초를 엮어 만든 이엉으로 덮혀 있는 넓직한 마루바닥 위의 식탁에서 샌드위치와 과일과 커피의 간식을 들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잠시 후 가이드는 우리 모두가 미술시간을 갖는다는 말에 그림을 그려본 지가 수 십년이 된 나는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바틱’이라는 동남아시아 전통염색기법으로 다양한 색채의 물감을 파라핀으로 도안된 천 위에 붓으로 색칠을 하는 작업이었다. 각 자의 작품들은 기념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로부터 받아 소지하였다. 바틱체험에 이어 체육시간으로 원주민들이 사냥에 사용하는 독침화살체험 시간을 갖었다. 대여섯 걸음걸이에 있는 과녁에 명중시키기 위해 입으로 훅 불어서 맞추는 것도 재미거리를 제공하였다. 가이드를 따라 라야라야 해변으로 향하는 길과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파도타기와 주변의 휴식 시설물 이용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해변 길목 끝자락에는 설명으로만 듣던 ‘신의 지팡이’라 불리는 ‘통캇 알리’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의 뿌리에는 사포닌성분이 인삼보다 30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뙤약볕의 해변을 둘러 본 후 점심을 원주민의 공연과 함께 하는 야외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즐겼다. 식후에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원주민과 함께 율동을 따라 하며 즐겁게 보내고 살아있는 뱀을 목에 두르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징그러운 느낌이 드는 파충류를 싫어하는 나도 용기를 내어 꿈틀거리는 뱀을 목에 둘러 보았는데 부드러운 피부와 달리 손에 전달되는 딱딱한 근육질의 느낌이 위압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렇게 식사와 휴식 시간을 즐긴 우리는 다음의 일정을 위해 해변의 반대 방향에 있는 맹그로브 강으로 향했다. 이 곳 맹그로브 강에서는 모터보트에 매달린 바나나보트를 서너명이 타고 강 하구 쪽으로 한 바퀴 돌아 급선회로 강물에 빠뜨리는 놀이와 함께 2인 1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수심이 얕은 강 상류 쪽을 노를 저으며 즐기는 시간을 갖었다.
붉은 색을 띄고 있는 맹그로브 강물은 보기보다 맑은 물인데 맹그로브나무 뿌리에서 내는 성분 때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이 강은 바다와 접해있는 강의 하구로 강물에도 염분의 짠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의 해설에 의하면 맹그로브 나무는 이 염분의 70% 이상을 걸러내며 그 나머지는 잎에 축적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강물로 떨어진다고 한다. 가이드는 설명과 함께 맹그로브 뿌리 한 토막을 잘라 내게 주었다. 잘라진 뿌리의 둥그런 단면 중앙 절반 정도가 스펀지 같은 부드러운 형태로 되어있는 모습을 보고서 맹그로브 나무의 특성을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맹그로브투어와 라야라야해변의 여정을 마친 우리는 다음 일정인 반딧불투어를 위해 바지선을 타고 다시 맹그로브 강을 건넜다.
이곳에서 반딧불투어를 할 수림가든까지는 남서쪽으로 약 55Km의 거리로 이동시간이 1시간 반정도 소요 되었다. 수림가든에 도착할 즈음에는 어느덧 석양의 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저녁 식후 반딧불투어를 하기위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한식당 주변에서 해변의 노을경관을 감상하며 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컴컴한 어둠이 찾아 들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식당에서 멀지 않은 반딧불투어 선착장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환하게 밝혀진 선착장 입구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반딧불투어 중에는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주의사항을 들으며 모터가 달린 유람선위에 올라 줄지어 놓인 의자에 차례로 앉았다. 요란한 모터소리가 출발을 알리며 선회하는 동시에 환하게 밝혔던 선착장 주변의 모든 전등이 소등되면서 주위가 암흑 같은 어둠으로 드리워 졌다.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한 강줄기를 따라 어느 정도 이동한 후 현지인의 손전등으로 강가의 맹그로브 나무들을 향해 불빛을 보내니 어두컴컴한 수로변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불빛을 향해 유람선으로 날아오기고 하였다. 유람선에 동승한 가이드는 우리들에게 반딧불을 향해 “마리! 마리!”라고 크게 불러 보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세요! 오세요!’란 뜻이라 한다. 손전등에서 발산하는 불빛은 나뭇잎을 필터로 하여 반딧불과 비슷한 파장의 빛을 보내면 수명이 2주정도 되는 반딧불들이 짝짓기 신호로 알고 날아든다고 한다. 호기심에 가이드에게 부탁해 나도 한 번 손전등 신호를 보내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흔쾌히 허락하였다. 현지인처럼 나뭇잎으로 불빛을 가리고 손바닥으로 빛의 신호주기를 흉내를 내었더니 반딧불들이 반응을 보여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는 유람선에서 반딧불과 함께하는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며 선착장으로 되돌아 왔다.
이러한 반딧불투어는 도심에서 자란 요즈음의 젊은 세대에게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으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롱불과 더불어 청정지역 두메산골에서 자란 우리들에게는 기대만큼 큰 감동을 느끼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 어릴적 해가 진 저녁이면 요즈음의 가로등보다 밝게 느껴졌던 달빛과 호롱불 생활에서 전등만큼 밝게 느꼈던 촛불이 생각난다. 그 시절 달빛 아래 논두렁을 거닐 때면 수 많은 반딧불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장관은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투명한 유리병에 맨손으로 잡아넣어 반짝거리는 반딧불을 관찰하던 추억이 유람선 투어 중 새록새록 동심의 추억이 떠 올랐다.
이렇게 오늘의 빡빡한 일정을 마친 우리는 이곳 수림가든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거리의 숙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11월 23일 전날의 빡빡한 일정과 달리 오전 자유시간과 12시 체크아웃 후 시내관광 투어를 하는 일정이다.
호텔조식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호텔 앞 길 건너 전통시장부터 해변 데크를 따라 정총무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늦은 밤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전통야시장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몇 몇 건어물상과 과일 판매대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전통시장을 지나니 잘 정돈된 나무 데크가 깔린 해안을 따라 걸었다. 깨끗하고 맑은 해변에 드문드문 여유롭게 정박되어 있는 고기잡이 배들과 호화롭게 보이는 요트들이 바다풍경을 한껏 정감있는 느낌을 주었다.
바닷가 해안 데크를 따라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한글로 쓰어진 간판도 눈에 띄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데크 끝자락에 다다르니 잔디가 깔끔하게 정리된 골프장이 해안선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경관을 연출하였다.
해변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따가운 햇볕을 피할 겸 시내 대로변의 그늘을 따라 숙소로 향해 걸었다. 대로변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낡은 버스들이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들 버스들은 마을버스와 같은 노선버스로 좌석에 승객들이 모두 승차하여 만차가 되어야 출발한다고 한다. 때문에 지정된 운행시간이 없다고 한다. 근래에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들에게는 불편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차량에는 에어컨이 없어 모든 차량들이 창문을 열고 있었다. 이러한 생소한 관경을 목격하고 나니 산책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도 한 번 둘러보라고 권유하였다.
12시가 되어 체크아웃을 한 우리들은 시내관광을 위해 여행가방을 버스에 싣고 출발하였다.
우선 사바 주청사로 가는 길에 리카스만 로터리에 위치한 사바주 최대의 모스크 이슬람사원 옆길에 하차하였다. 현재 모스크 사원 내부 사정으로 관광이 어렵다 하여 사원과 가로수인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남겼다. 주행하는 버스안에서 바라본 사원은 사원 주위에 잔잔한 물로 둘러 쌓여 있는 전경이 멋있어 폰영상으로 한 컷을 담았다.
다시 주청사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리카스만에 위치한 우뚝 솟은 주청사는 달리는 버스 왼쪽 차창 넘어 멀리 해면위로 보였다. 가이드에 의하면 사바주 구청사는 특이한 건축공법 즉 네델란드의 탑-다운 방식으로 지어져 꼭대기부터 지어 내려오는 공법으로 지진에 강하며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전에 사바재단 빌딩이었던 툰 무스타파 빌딩이었으며 사바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한다. 1977년에 완공된 구청사는 112m 높이로 32층의 웅장한 규모와 72면체의 원형으로 된 사바의 미래를 상징하는 로켓형상의 빌딩이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32개 부족과 72개 언어를 상징화한 것이라 한다. 건물 내부에는 360도 회전하는 고급레스토랑과 5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주립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바닷물과 바람에 부식되어 기울어져 있는 구청사 건물은 안전상 사용되지 않고 상징물의 역할만 하고 있다고 한다. 실질적인 업무는 옆에 새로 지어진 신청사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버스에서 하차한 우리는 청사를 배경으로 각가지 자세로 영상을 만들고 뙤약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콘크리트 바닥을 피해 도로 옆 나무그늘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과일주스 판매차량에서 구입한 냉과일 주스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오늘 오후의 시내관광 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여행일정의 하나인 쇼핑센터 방문을 하기위해 차량에 올라 출발하였다. 쇼핑센터를 향하는 중 조금 전까지 맑았던 날씨가 서서히 구름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콜현상이라 생각하면서 그치려니 생각했던 비는 멈출 줄 모르고 폭우로 변하며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폭우로 인해 외부활동을 할 수 없는 날씨에 비를 피해 실내쇼핑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 보다는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우 중에 3곳의 쇼핑센타, 건강식품과 라텍스 매장, 초콜릿 매장을 방문하며 시음시식과 함께 여행 기념으로 커피 등을 구매하고 쇼핑일정을 마쳤다.
서둘러 쇼핑을 마친 우리는 일정의 마지막으로 여정의 피로를 풀 마사지를 받기로 하였다. 예약된 시각까지는 약 2시간여 시간 여유가 있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숙소 앞 해변 데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노래방 기기까지 제공해 주는 이곳에서 우리 친구들은 노래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즐기기도 잠시, 카페에 초대된 현지인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팝송을 율동과 함께 경쾌하고 흥겹게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우리들 외 몇 분의 손님들이 자리를 뜨자 우리들만 남은 이 곳에서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 중에 몇 명이 열창중인 가수에게 팁을 제공하자 가수와 함께 뒤섞여 신나게 가무를 즐기다 보니 예정 시간이 다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예정된 1시간여의 마사지를 받은 우리들은 개운한 기분으로 출국수속을 위해 밤 늦은 시간에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11월 24일 01:40시 코타키나발루 공항을 출발하는 항공기는 인천공항에 07:50시에 도착 예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른 때와 달리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왜 항공기가 늦은 새벽 자정을 넘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새벽 2시경에 출발하는가 하는 점이다. 마침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던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가항공의 특성상 항공기의 운항시간을 늘리기 위해 주간에는 국내항로에 투입되는 관계로 해외항로는 늦은 시각에 운항한다는 말에 시원찮은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새벽 2시경에 코타키나발루공항을 이륙한 여객기는 아침 8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서 공항터미널 3층 구내식당에서 이영옥 친구가 제공한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1층 대합실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문복 친구가 제공한 커피를 들면서 3박 5일 여정의 해단식을 갖고 모두가 귀가 길에 나섰다.
금년 동창해외여행도 무사히 모두가 재미있고 즐겁게 만족스런 여행이 되어, 함께한 모든 친구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출발 전 기내식 대용의 간식을 제공한 여행사 친구 정정옥과 최정숙 부회장 그리고 유명 씨푸드 음식점에서 진수성찬의 저녁식사를 갖게 한 이정만 회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숙소에 모여 늦은 밤까지 허심탄회하게 담소를 나누며 고급 발렌타인 2병과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 준 원종석회장과 재미있고 진솔한 이야기로 친구들을 웃기고 울렸던 문경창 친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여행 중 현지식 때 반주용 소주를 제공해 준 재문친구, 저녁에 분위기 있는 해변 카페에서 맥주와 먹거리를 제공해 준 정진수 총무, 인천공항에서 아침식사와 커피를 제공해 준 이영옥과 이문복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여행 중 옵션여행경비 등을 지원해 준 동창회의 모든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또한 해박한 해설로 궁금증을 풀어 준 현지 가이드 잭과 안전요원 현지인 레드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여행일정에 차질이 없게 맑은 공기와 따뜻한 해변, 화창한 날씨의 시내관광 그리고 쇼핑 중의 폭우로 3박 5일의 짧은 기간 동안 보르네오섬의 기후 조건을 잘 알 수 있게 해 주신 자연의 신께도 감사드립니다.
2019년 11월 30일 늦은 밤
따사로운 가야해변을 생각하며~
신 원 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