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을 다녀 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책상 위에는 출발 전 받았던 여행 안내책자와 선상신분증과 카드 그리고 선상에서 배포되었던 선상신문이 정리되지 않고 그대로 놓여 있다. 아마도 마음 한켠에 아직 크루즈여행의 여운을 더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그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크루즈여행의 특성상 기항지 투어 이외의 여행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선상생활을 하는 관계로 크루즈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대형 크루즈여행을 하려면 유럽여행에서나 할 수 있었는데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크루즈여행 상품이 해마다 이루어지고 있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 이용된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는 이태리 선적으로 ‘신들의 배’라는 애칭을 갖고 있으며 승무원 1,100여명과 2,700여명의 여행객이 승선하였다. 크루즈선의 크기는 11만톤급으로 선체길이 290m, 폭 35.5m, 속도 23노트의 배로서 63빌딩을 눕혀 놓은 길이보다 40m 더 길다고 한다. 세레나호 내부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선박이라 한다. 특히 3층의 판테온 메인홀은 투명유리로 된 4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며 9층까지 인테리어된 조각품들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각 층은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정해졌다고 한다. 먼저 선체의 맨 윗 층인 11층에는 고급 카사노바 레스토랑(별 다섯 개 미슐랭 스타 수상자 쉐프:$59/인)과 삼사라 스파($149/75분)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은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11층 바깥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워터슬라이드 수영장(14층)과 또 다른 수영장이 있으나 아직 쌀쌀한 날씨로 개장되지는 않았다. 테라스에 즐비하게 놓인 썬베드도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인증샷을 한 컷 남겼다. 9층의 중앙(솔레)과 선미(우라노)에 자리잡고 있는 수영장의 투명유리 천정은 날씨와 기온에 따라 개폐가 가능하나 역시 여행 중에는 쌀쌀한 날씨로 인해 닫혀 있었다. 9층 수영장 사이에 위치한 프로메테오 뷔페식당은 유럽식 메뉴를 자유로이 24시간 즐길 수 있으며 사방으로 트인 유리벽을 통한 바다경관을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는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시야가 확 트인 선미에서 식사는 선체가 전진하며 만들어 내는 물보라와 바다 위로 점프하는 돌고래들의 경관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행 중 식사는 조식과 중식은 9층 프로메테오 뷔페식당에서 하고, 정찬인 석식은 선수 3층에 위치한 베스타 레스토랑과 선미 3,4층에 위치한 케레스 레스토랑에서 2개 조로 나뉘어 시차(1차17:15, 2차19:45시)를 두고 이루어 진다. 놀랍게도 2,700여명의 여행객이 함께하는 식사시간에도 번잡하거나 혼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모두가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크루즈여행지의 항로가 멀다 보니 전일 항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선내 프로그램과 공연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특히 선수 3,4,5층에 위치한 지오베 대극장은 1,4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각 종 공연과 콘서트가 화려한 조명과 무대 위에서 진행된다. 또한 9층 수영장 옆 대형화면이 걸린 광장과 5층 그랜드 바에서는 댄스강좌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과 프로그램이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며 각 자의 취향에 따라 매일 숙소로 배달되는 한글신문에 기재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있다. 댄스강사 마에스트로 토니가 진행하는 강좌는 다양한 댄스 장르(차차차,룸바,삼바,바타차 등)를 초보자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스텝과 동작으로 모두가 음악에 맞춰 즐길 수가 있게 하였다. 그 밖에도 5층에 위치한 면세점, 카페테리아, 카지노, 큐비드볼륨, 루나라운지, 노래방, 4층의 판 디스코장 등 다양한 시설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길 수가 있게 되어있다. 3층의 판테온 메인홀에서는 항상 분위기 있는 은은한 노래가 라이브 가수와 함께 연주되고 있어 가끔은 여행객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광경도 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선상에서의 생활은 매일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선상 곳곳에서 진행되어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금년도 동창 해외여행을 위해 작년 11월에 크루즈 여행경비가 할인된 비용으로 4인용 2실을 확보하여 동창들의 카톡에 공지하였으나 2월 말까지 5명의 친구 외에는 추가 참가자가 없었다. 더구나 그 중 한 명이 이미 다녀온 여행이라 취소하는 바람에 4명의 친구가 여행신청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1주일의 여행기간과 경비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듯 하였다. 적은 인원으로 출발하게 된 이번 여행은 적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박명순의 인천친구들 4명이 합류하기로 함에 따라 8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속초항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선에 모이기 위해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 각 도시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탑승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5월 6일 9:30시에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9호차를 배정받았다. 출발시간 전 이르게 도착한 나와 이영옥친구는 주변의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늦게 도착한 9호차를 승차하기 위해 수화물에 태그를 달아 싣고 승선권을 받아 버스에 올랐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영옥친구의 지갑 속에 없어진 신용카드를 확인하기 위해 다급히 커피카페에 다녀왔지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분실신고를 하기로 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버스 안에서 강대훈 후배로부터 카톡의 메시지가 왔다. 잠실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33호차에 20회 후배 7명이 이번 크루즈여행을 함께하는데 휴게소에서 내 동생가족을 만나 우리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정말로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다. 이번 크루즈 여행에는 전국 각 지의 2,700명의 승객이 함께하는데 5명의 동생가족과 7명의 후배들 8명의 우리 팀이 동행하게 됨에 따라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 여행의 즐거움이 한층 기대되었다.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에 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는 양양 낙산사에서 속초항을 향하는 해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우측 해변으로 몰려오는 높은 파도가 우리들의 여행을 반기듯 해변에 부딪치며 시원한 물보라를 선사하였다. 속초항에는 전국 각 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로 북적거려 산만한 가운데 여행사 각 조의 팻말을 든 가이드의 큰 소리 안내에 따라 두 줄로 서서 인원체크를 하며 출국수속을 마치고 배정된 각 방으로 입실하였다. 우리 방은 2326호로 2층 좌측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에 비교적 편리한 곳이었다. 각 룸을 표시하는 네 자리 숫자의 의미는 첫 숫자는 층수를, 그다음 숫자들는 선수(작은 수) 또는 선미(큰 수) 쪽을 나타내고 맨 끝 수는 선체 진행방향으로 홀수는 우측, 짝수는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4명이 이용하는 우리 방은 바닥에 2개의 침대와 천정에 부착된 2개의 침대로 비교적 협소하지만 여행비용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다. 문쪽에 위치한 화장실과 샤워기, 옷장 또한 그럭저럭 사용함에 어려움은 없었다. 한편 6층 위치한 동생가족의 방은 2인실로서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유리창과 휴식의자와 탁자가 있는 발코니까지 넓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4인실 보다 2배 가량의 비용이 말해주는 듯 하다. 아무튼 비좁은 방에 여장을 풀고 승선 설명회와 출항 전 모두가 참가하여야 하는 해상안전교육 및 훈련을 받기 위해 구명보트가 설치되어 있는 4층으로 향했다. 때마침 교육장인 이곳에서 20회 후배 7명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첫 날의 점심은 수많은 여행객이 음식점마다 붐비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볍게 우동과 긴 대기 줄을 기다려 구입한 호두과자로 입가심을 하였다. 첫 날의 특성상 선내의 각 위치에서 공연과 파티가 있었지만 내부 위치에 익숙하지 않아 그저 저녁식사 전 3,4,5층 지오베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환영쇼에 참석하였다. 대극장은 1,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유명한 노래들에 맞춰 부르는 가수와 댄서들의 박진감 넘치고 스펙타클한 분위기는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쇼 관람을 마친 우리는 첫 저녁 정찬을 하기위해 정장차림으로 19:45시에 3층 베스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정찬은 각 조별로 자리가 배정되어 있어 번잡하지 않고 여유로워 깔끔하게 준비된 식탁에 자리하였다. 웨이터가 들고 온 선상에서 처음 접하는 메뉴판의 복잡한 내용과 먹어 보지 않았던 음식에 대한 궁금하고 애매한 느낌이 들어 우리들 넷은 2명씩 각기 다른 메뉴를 선택하여 서로가 반반씩 맛 볼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원래 크루즈는 이태리 선사로서 유럽식 스타일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는 한계가 있는 듯 느꼈다. 비록 수 십 명의 쉐프 중 한 명의 한국인 쉐프도 있다는 소개도 있었고 한국인을 위해 특별히 밥과 국 그리고 고추장도 제공되었다. 그러나 모든 메뉴의 제공 순서와 밥과 국을 따로 제공하는 등 무언가 우리들에게는 어설프게 느껴졌다. 그나마 은숙씨가 순발력을 발휘하여 식탁에 마련된 고추장과 기름을 넣어 칼칼한 맛이 나게 비빈 비빔밥이 별미로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상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랐다. 9층은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2개의 수영장과 매일 아침과 점심식사를 하는 프로메테오 뷔페식당이 있어 선상생활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크루즈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 9층에서 계단을 통해 10층에 오르면 중간 쯤 외부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어 야외 테라스에서 직접 바닷바람을 접할 수 있다. 아직은 바깥 공기가 쌀쌀하여 나와 있는 여행객은 별로 없었다. 발길을 돌려 5층으로 내려갔다. 5층에서 면세점과 사진관을 지나 그랜드 바를 지나면 카지노와 선미에 루나 라운지와 큐비드 볼륨이 있다. 마침 5층 그랜드 바에서는 댄스강사 마에스트로 토니의 ‘바타차’ 댄스강좌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타차’는 우리에게 생소한 춤으로 서양의 사교춤으로 해변가에서 연인들 끼리 비키니 차림으로 힙을 흔들며 추는 관능적인 춤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강사는 초보자인 여행객들에게 단순하고 쉬운 동작으로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게 진행을 하고 있었다. 댄스강좌가 끝나는 밤 10경부터는 자유로이 연주와 노래에 맞춰 다양한 댄스를 각 자가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때마침 댄스를 즐기려 온 몇 몇 여행객 중에 오래 전 안면이 있던 부부와 수 년 전 같은 학원에서 수업을 받았던 지인을 만나 모두들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지인 부부의 권유로 초면인 분과 어떨 결에 댄스를 하게 되었다. 연주 음악에 맞춰 몇 곡을 추고 나니 주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친구 일행과 이번 여행을 동행하게 된 7명의 후배들의 격려박수와 환호에 부응하기 위하여 파트너를 바꿔가며 왈츠, 탱고, 룸바, 자이브, 블르스, 지르박 등 다양한 댄스로 땀이 흥건하게 나도록 즐겼다. 여행 출발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하며 늦은 밤 자정 무렵에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5월 7일 화요일, 전 날 17시에 속초항을 출항한 크루즈는 계속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가운데 9층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자리 잡았다. 우측으로 해가 떠오르며 비추는 찬란한 해면과 좌측 멀리 보이는 육지와 선체가 전진하며 가르는 물결을 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식후에는 코스타 카드 등록기로 VISA카드 연계 등록을 마치고 3층 메인홀에서 할인 판매를 하는 고급 브랜드의 선글라스와 가방과 4, 5층의 면세점을 구경하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선내를 둘러 보며 점심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장장 21시간 동안 항해를 한 크루즈는 오후 2시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에 입항하게 되었다. 크루즈가 정박한 패리터미널 바로 옆에는 해군기지 답게 군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3시부터 기항지 관광옵션에 따른 각 조별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순차적으로 하선하여 반나절의 블라디보스톡 관광에 나섰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위치한 인구 약 60만명의 유럽대륙으로 1860년 러시아 군사기지로 세워져 블라디보스톡(‘동방을 다스린다’는 뜻)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극동지방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항구와 해군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1872년 러시아의 태평양 해군지지가 이전한 후 급속도로 발전하여 1880년에 시가 되었다고 한다. 철도도시로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쪽 종점이며 국내선 전용공항도 있다고 한다. 러시아 연방 극동지역의 교육·문화 중심지로서 극동과학 센터와 극동공립대학교(1920)·의과대학·예술대학·공과대학·상과대학·선박공학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고 한다. 시내관광을 선택한 우리들은 젊은 여성의 현지가이드가 동승한 관광버스를 타고 잠수함박물관이 있는 광장 앞 도로에서 하차하였다. 때마침 광장에서는 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전승절(5월 9일) 행사를 위해 악단의 연주에 맞춰 행진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어리고 키가 작은 어린아이가 장단에 발을 맞추지 못해 별도로 반복적으로 지도를 받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광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C-56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는데 당시 독일 군함을 14척을 침몰시켰다고 한다. 그 후 훈련용으로 사용하다가 1975년에 승전 30주년을 기념하며 이곳으로 옮겨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1941년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는 21만명의 병사들 중 귀환하지 못한 5만여 명의 전사자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꺼지지 않을 ‘영원의 불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원의 불꽃’ 양 옆에는 미모의 젊은 여군이 소총으로 무장한 채 부동자세로 이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주변에 근무 교대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서너명의 여군이 있어 나와 사진촬영을 부탁하였더니 흔쾌히 응하여 인증 샷을 남겼다. 영원의 불꽃 옆의 계단을 오르니 참전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부조 조각상들이 있었다. 조각상 벽면의 위쪽에는 작은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인 성 앤드류(안드레아) 소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개선문(니콜라이 개선문)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여러 가지 색상으로 꾸며지고 그 모양이 우리에 익숙한 독립문 모양의 개선문이 아닌 색다른 느낌을 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이는 1891년에 처음 만들어 졌고 1917년 2월혁명 때 니콜라이 2세가 처형당한 뒤 소비에트 연방시대에 파괴되었다가 200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제독광장에서의 제한된 짧은 시간동안 둘러 본 후 다시 버스에 올라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독수리전망대로 이동하였다. 비스듬한 도로변에 주차된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간 독수리전망대는 루스키섬으로 연결해 주는 금각교의 전망과 러시아인들에게 문자를 만들어 준 키릴형제 동상 키릴과 메소디우스 형제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이곳 전망대는 금각만과 금각교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금각교 가까운 곳에 정박되어 있는 우리의 크루즈선도 시야에 들어왔다. 키릴과 메소디우스 형제는 스리스 선교사로서 체코에서 동방정교를 선교할 목적으로 글라골 문자를 창안했다고 한다. 이 문자가 발전하여 키릴문자가 되어서 슬라브족의 종교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슬라브족의 사도'로 불리운다고 한다. 다시 서둘러 이동한 행선지는 포크롭스키 공원과 성당이다. 이 공원은 19세기 후반에는 도심 자체가 작아 불라디보스톡의 외곽지역으로 마을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공원의 바로 옆에 정교회 사원이이 있는 것도 장례의 편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또한 공원 내에는 가정을 수호하고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동상이 있었다. 성당은 1902년도에 세워졌으나 소련 공산주의 정권 시절인 1930년대에 소련정부에 의해 폭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러일전쟁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다시 세워진 성당으로 20세기 초 포크롭스키신부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때마침 성당 안에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어 내부를 조용히 들여다 볼수 있었다. 성당의 전면에는 수많은 금색로 드리워진 아치속의 성화가 화려한 모습으로 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성당 입구에는 신자들이 소원을 빌며 세워놓은 많은 촛불들이 성화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몇 몇 신도들은 큼지막한 십자가상을 성당 안으로 들여오는 행사가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크루즈에서 하선하여 이곳저곳의 둘러보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자연스런 생리현상을 해소하기를 원했다. 공원에서 하차 하자마자 화장실을 찾는 승객들의 요구에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공원 아래쪽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조그만 간이 화장실이었다. 4칸의 불결한 간이화장실 앞에 3칸은 여성, 1칸은 남성이 이용하기 위해 긴 줄로 서서 기다리며 해소하는 것은 참사에 가까웠다. 명색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에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이 없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후에는 이런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즉시 여행사와 블라디보스톡 공원관리자와 신속히 협의하여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의 방문지는 블라디보스톡 젊은이의 거리라는 아르바트 거리였다. 블라디보스톡의 홍대거리와 같은 이곳은 넓직하고 비스듬한 내리막길의 양 쪽으로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가들로 이루어져 있고 도로 중앙에는 몇 개의 분수대가 있고 도로 맨 끝은 바다를 접한 해양공원으로 여유로운 공간에는 큰 분수대에서 높게 솟구치는 물줄기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 젊은이의 거리답게 길거리 복판에서 소형 오디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 여성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 온 기념으로 보드카 2병을 2,100루블(약 4만원)에 구입하였다. 아르바트에서 멀지 않는 혁명광장까지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도보로 이동하였다. 혁명광장의 넓은 광장의 도로변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기념탑은 1917~1922년 소비에트 혁명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하며 광장 우측 끝에는 새로운 정교회 성당이 건립되고 있는데 완공되려면 1년 정도 더 소요된다고 한다. 또한 혁명광장은 1937년 고려인들을 모아 기차에 태워 강제 이주를 단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정박하고 있는 우리의 크루즈선도 보였다. 블라디보스톡 여정의 마지막으로 광장 모퉁이에 있는 기념품가게를 둘러보고 버스에 승차하기 위해 오르려는데 차량 앞에서 보따리상인 남성이 마트료시카를 져렴(만원)하게 팔고 있어 영옥친구가 2개를 구입하여 1개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반나절의 블라디보스톡 여정을 마치고 석식 정찬을 위해 크루즈선으로 향했다. 크루즈 규정상 주류반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르바트거리에서 구입한 보드카를 은숙친구와 내가 1병씩 소지하였는데 나의 배낭에 든 것이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압수(?)되었고 바로 뒤 따라오던 은숙씨는 재치와 순발력으로 통과하여 그날 저녁 후배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하선 시 되돌려 받은 보드카는 나중에 우리 여행을 도와준 대학동기 여행사친구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하였다. 우리가 잠자리에 든 자정(12시)에 블라디보스톡을 출항한 크루즈선는 일본 오타루를 향해 다음 날인 8일은 전일 항해 일정으로 다양한 크루즈 선내 프로그램과 공연 및 자유시간으로 보내고 다음 날 9일 오전 7시에 30여 시간의 장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북해도 오타루 신 니혼카이 페리터미널에 입항하였다. 승객들은 하선하여 준비된 차량에 올라 잠깐의 이동 후 면세점 앞에 하차하여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현지식인 샤부샤부집에서 하였다. 많은 인원의 식사라 그런지 두툼한 고기의 맛은 국내의 일반 대중화된 샤부집에 비해 그다지 좋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식후 오타루항에서 멀지 않은 오타루 시내관광을 나섰다. 먼저 일본에 관련하여 알아보면 일본의 행정구역은 1都(東京都-도쿄도), 1道(北海道-홋카이도), 2府(大阪府-오사카부), 京都府-교토부), 43개의 「현」으로 나누어지고 또한 혼슈우(本州). 규슈(九州). 시코쿠(四國). 홋카이도(北海道)의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이드의 해설에 의하면 홋카이도는 세계 21번째로 큰 섬으로 550만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홋카이도는 과거에 아이누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홋카이도’ 는 ‘북쪽 바닷길을 여는 곳’이란 뜻이란다. 1868년 메이지유신 때 개척하기 위해 범죄자들로 구성되 둔병제를 활용하여 수많은 원주민의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에도시대에는 ‘오랑캐란 뜻’의 ‘에도치’라 칭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족은 2만여 명으로 그 중 2명 정도만 아이누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따라서 홋카이도 역사는 150여년 정도로 주로 3차 산업이 발달되었고 말로 만든 마유오일이 대표적인 지역상품 중 하나라고 하였다. 북단 홋카이도 서부에 위치한 오타루는 인구 12만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오타루’란 ‘모래가 많은 바닷가’룰 의미하는 아이누어 ‘오타루나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오타루는 19~20세기에는 일본 최고의 항구였다고 한다. 오타루 시내의 넓은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가이드를 따라 길 건너 시내길목으로 들어선 우리가 향한 곳은 전 세계의 오르골을 모아 전시하고 판매하는 오르골당으로 향했다. 이 오르골당은 역사가 100년이 넘고 판매하는 오르골만 약 3만여 점 정도 된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선 내부는 수 많은 다양한 모양의 오르골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목조로 된 독특한 내부구조를 따라 윗층까지 사방으로 전시되어 있는 각 가지 오르골들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였다.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탑에서는 주기적으로 기차의 기적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꼭대기에서는 연기를 내 품고 있었다. 오르골당을 둘러본 후 도로 양측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상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오타루 운하 방향으로 걷게 되었다. 가는 길에 상가 2층 유리공방에서 작업하고 있는 여성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길 건너 제과점에서 다양한 과자를 시식도 하고 유명 제과점에서 기념으로 각 자 1박스씩 구매하고 제과점 윗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갖기도 하였다. 제한된 투어시간으로 인하여 오타루 운하가 있는 곳으로 바쁘게 이동하였다. 홋카이도 무역항 오타루의 상징인 오타루 운하는 메이지 시대부터 유통의 거점이었던 길이 1.3Km 폭 40m의 규모로 1914년부터 10년간 건설해 1923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지금은 운하로서의 기능은 쇠퇴했지만 운하 주변에는 과거 창고, 은행 등으로 사용되던 오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건물들은 현재 레스토랑, 골동품 매장 등으로 개조해 여행객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영화 ‘러브레터’와 만화영화 ‘철도원’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친구들과 이곳 운하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만들고 다음 행선지인 삿포로로 출발하기 위해 급한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타루에서 35Km정도의 거리에 있는 삿포로의 오도리공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삿포로의 지명은 ‘산 포로(건조하고 넓은 땅)’, ‘사리 포로 벧(튼 습지가 있는 곳)‘등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1972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하였으며 세계 3대 겨울축제라고 불리는 삿포로 눈축제가 매년 2월에 열린다고 한다. 버스는 50여분 달려 오도리 공원에 도착하였다. 오도리 공원의 동쪽 끝에 있는 삿포로의 랜드마크인 TV타워가 있다. 삿포로 TV타워는 1957년에 지어진 탑으로 1층에는 오락실, 2층에는 다목적 홀, 3층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TV타워를 배경으로 공원 분수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한 블록정도 크기의 공원 주변을 둘러 본 후 곧 바로 탑승하여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로 향했다. 오도리 공원에서 세 블록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는 “아카렌가(‘붉은 벽돌’이라는 의미)”라는 애칭으로 도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카렌가청사가 건립된 것은 메이지 21년(1888)이라고 한다. 미국풍의 네오바로크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청사 앞뜰에는 만발한 왕벚꽃과 튜립꽃이 보기 좋은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경관을 휴대폰 영상에 담고서 건물 내부도 잠시 들러 본 후 입구에 비치된 청사소개 및 안내 인쇄물을 갖고서 차량에 올랐다. 당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다시 크루즈선이 정박되어 있는 오타루항으로 출발하였다. 석식정찬 시간에 늦지 않게 승선한 승객들은 정찬과 함께 식후의 즐거운 여유시간을 갖고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5월 10일 전날 17:00시 오타루항를 출발한 크루즈선은 장장 16시간여 항해 후 오전 9:30시경에 아오모리항에 입항하였다. 아오모리항은 육지로 둥글게 둘러 쌓인 드넓은 만을 통과하게 되는데 청명한 날씨에 9층 식당 선미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시야가 탁 트인 경관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크루즈선의 추진기가 만들어 내는 물보라를 따라오며 해면위로 점프하는 돌고래 무리들은 보는 이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아오모리는 일본 혼슈 최북단에 위치하며 126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태평양, 북쪽으로는 쓰가루해협, 서쪽으로는 동해와 접한다. 쌀과 함께 사과가 재배되는데 사과는 일본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군용 말을 길렀으나 오래 전부터 육우를 기르거나 낙농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항지 선택관광에 따라 조별로 순차적으로 하선한 우리는 도와다 호수 관광조로 변함없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정된 버스에 올랐다. 아오모리항에서 도와다 호수까지 거리은 약 85Km로 소요시간은 1시간 반에서 2시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도와다 호수를 향해 출발한 버스는 달리는 내내 한동안 우측으로 꼭대기에서 중턱까지 하얗게 눈 덮인 산을 볼 수가 있었다. 이 산은 이와키산으로 해발 1,625m의 성층화산이라고 한다. 이 설산은 아오모리항에 입항하는 크루즈 선상에서도 볼 수가 있었는데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달리는 버스에서 설산의 풍경이 사라질 쯤에는 나무가 우거진 원시림 같은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산림이 우거진 계곡의 높은 능선을 지날 때는 아직도 녹지 않는 눈들이 희끗희끗 창밖으로 보였다. 한참을 굽이돌아 우거진 숲을 달리던 버스는 드디어 도와다 호수의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유람할 도와다 호수는 약 2천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해발 400m에 있는 이중칼데라 호수라고 한다. 호수 주변이 44Km, 면적 60㎢, 중심부의 깊이는 334m로 일본에서 3번째로 깊은 호수라 한다. 주위의 산에서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고 오이라세 계류를 통해 북동쪽으로 흘러나간다고 한다. 가이드에 의하면 호수의 물이 너무 맑아 물고기가 살 수 없었는데 이 후 몇 차례의 양식 끝에 지금은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2척의 유람선이 정박되어 있었다, 우리는 2층 유람선상에 올라 간간히 들려오는 우리말 해설을 들으며 호수주면을 돌아 20~30분간의 유람을 마쳤다. 유람선에서 하선한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호수주변에 있는 호수의 신을 섬기는 도와다 신사를 도보로 둘러보았다. 신사로 가는 길 주변의 우람하고 우거진 나무들도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일본은 8만여 종의 신을 숭배하며 20만여 개의 신사가 있다고 한다. 이어서 소녀상이 있는 호숫가로 발길을 옮겼다. 소녀상 앞에서 친구들과 인증샷을 남기고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처음 출발지인 벚꽃이 만발한 주차장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유람을 마친 우리는 호수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는데 생선구이를 겻들인 깔끔하고 단백한 음식은 맛있었다. 더구나 옆자리에서 반주를 즐기던 노부부 내외의 남편으로부터 얻어 마신 반주 한 잔은 더욱 음식의 풍미를 느끼게 하였다. 점심을 마친 후 뒤돌아 가는 길에 오이라세 계류를 둘러보게 되었다. 오이라세 계류는 도와다 호수의 물을 아주 조금씩 흘려내려 류량을 조절하여 계류 주변의 이끼류까지고 보호한다고 한다. 계류를 따라 14Km 구간에 조성된 산책로 주변 곳곳에는 폭포가 형성되어 있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우리는 계류 초입에 하차하여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20~30분 간의 트래킹을 하였다.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하며 걷는 시간은 말 그대로 힐링의 시간이 되었고 기억에 남을 여정이었다. 걷는 중간 멋진 장소에서는 각 자 영상을 만들며 도보구간 끝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 가는 길의 경치도 일품이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이라세 계류를 벗어난 차량은 출발지로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당일 여정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점심식사 중 겻들인 반주의 영향인지 서서히 졸음이 몰려오며 어렴풋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던 차량이 굽이 길을 돌며 휘청거리게 하여 눈을 떠 보니 놀랍게도 창밖에는 도로 양변으로 하얀 설벽으로 드리워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전 여정에 예고도 없었던 처음 접하는 설경의 풍광은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관광버스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6m의 높이로 쌓였던 눈이 서서히 녹아 6월경이 되어야 눈이 다 녹는다고 한다. 녹아 내리고 있는 현재의 설벽 높이는 2~3m정도로 버스 보다도 더 높게 보였다. 설벽이 형성된 이곳은 핫코다 산으로 아오모리현 중부에 있는 화산군으로 최고봉은 해발 1,584m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와다 호수 주변의 만발한 벚꽃을 즐겼는데 몇 십분 되지 않은 시간에 한 겨울의 설벽을 만나니 한 시간 사이에 봄과 겨울을 경험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이벤트를 뜻밖에 맞이 하였다. 이는 이번 여행의 백미로 손꼽을 만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크루즈 여행의 기항지 여정을 모두 마친 우리는 아오모리항의 크루즈선에 재승선하여 석식 정찬을 마치고 부산항을 향해 출항하는 코스타 세레나호의 선내 프로그램을 즐기며 기나긴 40여 시간의 항해를 하게 되었다. 부산항으로 귀항하는 선내에서는 다양한 쇼 공연과 재미있고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고 특히 가수 나상도와 신지의 공연도 즐거움을 더 하였다. 전날 전일 항해를 하고 5월 10일 20시에 아오모리항을 떠난 크루즈선은 5월 12일 정오 12시에 부산항에 정박하였다. 선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 입국 하선하여 부산역까지 여행사에서 마련한 셔틀버스로 이동하였다. 여행 출발 전 예약한 상경행KTX는 18:25시, 3시간 반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우리 일행 8명은 여행 해단식 겸 뒷풀이로 전망 좋은 역사 2층 음식점에서 소맥과 먹거리를 즐기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모두가 기분 좋을 정도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무사히 귀가를 하게 되었다. 이번 크루즈 여행을 마치며 어느 때 보다도 재미있고 즐겁고 의미있는 보람된 여행을 하게 되어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여행 중 생일을 맞이한 매제와 동생 가족들, 더불어 가족같이 보살펴 주고 정찬에 초대하여 생일 이벤트를 계획하고 마련해 주신 담당 가이드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우리 일행인 박명순의 생일축하를 위해 늦은 밤까지 함께하며 축복해 준 후배들과 우리 팀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끝으로 이번 크루즈를 기획한 여행사와 봉사한 1,100여 명의 승무원, 함께 승선한 2,700여 명의 여행객들에게도 무사히 여정을 마치게 되어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2019년 5월 22일 크루즈 여행을 다녀 온 느낌을 갖고서~ 신 원 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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