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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남아

베트남(하롱베이) 여행을 다녀와서~

by 신원붕 2017. 11. 30.

베트남(하롱베이)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중학교 동창들의 해외여행이 2014년 백두산-두만강, 2015년 홍콩-태국에 이어 금년도에는 26명의 친구들이 1116()부터 19()까지 34일 일정으로 베트남 하롱베이로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 당일 인천공항 집결시각은 오전 5:40, 너무 이른 시각으로 고향이나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하루 전 상경하여 서울 근교에 머물며 이른 새벽에 공항으로 향하며 이동하는 상황을 알리는 카톡 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있었다. 나는 비교적 공항과 근거리에 살고 있으나 약속시각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출근해야 할 아내에게 부탁하여 공항까지 만날 시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임에도 공항 대합실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 속에 우리 일행은 셀프 티켓팅머신으로 탑승권을 발부받아 긴 대기 줄을 기다려 수화물을 보내고 탑승 대기실로 향했다.

 

  출발 전 영하의 날씨인 우리나라와 20도 전 후의 하노이의 기온 차이로 적당한 옷차림이 어려워 여행가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춘추복 아웃복장에 평소에 입지 않던 내복을 껴입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여벌로 반바지와 긴바지를 준비하였으나 하노이나 하롱베이의 기온이 덥고 후덕지근한 날씨였지만 짧은 바지를 입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여행지인 베트남하면 우리에겐 어쩐지 미묘한 느낌의 기억이 생각나는 나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청색 띠와 백색 띠를 머리에 둘러매고 맹호부대의 군가를 열창을 하며 응원가를 부르던 일, 영화나 라디오 뉘우스 시간에 용맹스런 파월 장병들의 활약상을 전하는 소식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태어나 얼마 되지 않은 1955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이 초등학교 시절인 1964년 경 미국 등 외국군대 개입으로 지루했던 전쟁이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 후 1975도에서야 종전이 되었으니 우리들 세대에게는 남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나라이다.

 

  111608:10시 인천공항에서 KE0479기에 몸을 싣고 4시간여 운항 후에 한국보다 2시간 늦은 시차의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서 33의 면적에 75십만 인구로 서울의 6백만1천만 인구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상당히 적은 도시이다.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던 현지 가이드(류창우/이사:008497998167)의 안내에 따라 하노이 공항 내 식당에서 월남 쌀국수로 간단한 점심을 마친 후 하노이 시내관광을 위해 이동하였다.

 

  이동 중 탁한 물이 흐르는 홍강(중국 윈난성이 발원지로 1,200의 동킹만까지)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달리며 우측에 보이는 롱비엔철교(프랑스인 에펠이 설계)관한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호안끼엠호수 주변에 위치한 스트리트카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전동차인 스트리트카에 7명씩 나누어 타고 특별관광구역으로 지정된 상인들의 거리인 ‘36거리의 골목을 지그재그로 둘러보며 30여 분 간의 시장거리를 구경하였다.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 지방의 정리되지 않은 전통시장의 거리처럼 좁고 번잡하였다. 거리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3~4층 상가건물 사이로 난 좁은 도로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택시 등이 혼잡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안내에 의하면 이 곳 중심가의 땅값이 평당 1억원이 넘는다는 말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가 탄 스트리트카는 시끄럽고 산만했던 시장골목을 벗어나 비교적 한가롭고 여유로운 호숫가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출발지였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먼저 도착한 몇 몇 친구들은 일행을 기다리면서 길거리의 도넛츠로 간식을 하며 이를 파는 바구니상과 기념촬영도 하고 여친들은 저렴(8개에 만원)하고 예쁘장한 손가방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다음의 행선지는 바딘광장으로 베트남의 독립통일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이 광장에서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특히 호치민 묘소 안에는 미이라로 보관된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시신의 보존을 위해 매년 20억이 넘는 비용을 들여 러시아로 옮겨 방부처리를 하는데 3개월이 소요되며 우리가 여행 중인 이 기간 동안은 관람할 수 없다고 한다. 넓은 콘크리트의 광장에 뜨겁게 내리 째는 햇볕에 황급히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 가까이 위치한 그늘이 있는 호치민 생가를 향했다.

 

  호치민 생가로 가는 중에 외국의 국빈이 방문시 이용된다는 영빈관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호치민이 살았던 목조건물에 들어섰다. 호치민이 1958년부터 11년 동안 거주한 아담한 2층구조의 목제건물은 원주민들의 주거형태에 착안하여 지었다는 1층은 목조 기둥만 있고 2층 목제 마루위에 생활했던 시계 전화기 3대 침대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중에도 이 곳에서 생활하며 3대의 전화로 육해공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집 앞에는 큰 연못과 주변에 망고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호치민은 살아생전 이곳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망고나무를 직접 가꾸며 생활했다고 한다. 연못의 물은 혼탁하여 물속이 잘 보이지 않아 물 위 가까이에서 노닐고 있는 몇 마리의 비단잉어의 모습만 관찰되었다. 집 옆의 몇 그루의 망고나무에 매달린 망고가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는데 특별히 관리하고 있어 관광객은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에 전신에 땀에 흥건한 상태로 다음 행선지인 한기둥사원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베트남의 국보 제1호로 지정된 사찰이며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기둥이 하나라고 하여 일주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름처럼 기둥 하나가 사찰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그 주변은 물로 차 있고 네 모퉁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사원을 두 바퀴를 돌고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루어진다 하며 아이도 점지해 준다하여 많은 현지인들이 많이 찿는 곳이라 한다. 명성에 비해서는 아담하고 초라한 모습의 사원이라 느껴졌다. 사원 옆에 가이드가 마련한 망고 수박 등의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단체 인증샷을 만들고 다음 경로를 위해 이동차량으로 탑승하였다.

 

  하노이 당일 관광의 마지막 행선지 호치민 박물관을 들렀다. 건물 입구에서 바라본 박물관은 박물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박물관 현관에 세워진 호치민 동상을 제외한 전시물들은 외국의 귀빈들로부터 받은 소소한 선물 외에는 별로 볼거리가 없는 전시물들이었다.

 

  이렇게 도착 당일 반나절의 하노이 시내관광을 마치고 여행 목적지인 하롱베이로 향하는 길에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 주변을 지나는 데 주변 경관이 여유롭고 잘 정돈된 잔디와 나무들이 보기 좋았다. 서호는 원래 홍강의 한 지류였으나 물줄기가 변하면서 호수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 호수에는 황금물소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옛날 의술에 정통한 거인이 있었는데 왕은 왕실에 환자가 발생하면 그를 불러 치료하곤 했다. 그의 소문이 중국까지 다다라 모든 의사들이 실패한 중국 왕을 그가 치료했다고 한다. 왕은 그에게 큰 상을 내리려고 했으나 그는 황금을 마다하고 구리만 받아 돌아왔다. 베트남으로 와서 이 구리로 큰 종을 만들어 치니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 왕실에 있던 황금물소가 이 소리를 어미가 부르는 소리로 오인하여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다. 이 물소들이 홍강 일대를 짓밟고 지나가자 현재의 떠이 호수 일대에 물이 차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 호수는 국가 소유이나 개인에게 이용권을 불하 하여 호수의 물고기는 소유자 이외에는 함부로 낚시나 고기를 잡을 수 없다고 한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거리는 약 162이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이동 소요시간은 약 3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 생각에 거리에 비해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고 느꼈다. 막상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말이 고속도로지 오토바이와 일반 차량들이 뒤섞여 우리의 지방도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정도 지나다 보니 차량 통행량이 많아지고 정체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엘지, 그 협력업체들이 들어서 있는 공업단지를 지나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종사자가 약 2만 여명의 베트남인 들이 고용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당국의 입주 업체에 대한 각 종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로 풍부한 지하자원과 자연적 조건으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였다.

 

  도로 위를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차창 밖으로 어둠이 드리워지면서 어느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조촐한 월남국수의 점심식사 후 무더운 날씨에 강행군의 여정으로 시장기가 감도는 시점에서의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였다. 진수성찬의 차림상은 아니었지만 부드러운 상추와 잘 삶겨진 돼지고기 수육만으로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식사였다. 무한리필로 제공되는 상추와 수육을 제공하는 종업원의 손길이 매우 분주하게 적극적으로 하는 서비스가 맘에 들어 식후에 소액의 팁을 제공하였다. 돼지수육과 환상의 궁합인 소주를 겻들인 즐거운 져녁 식사를 마치고 얼큰한 취기가 도는 기분 좋은 상황에서 다시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컴컴한 어둠속을 달리는 차량 속에서 식후의 노곤한 심신상태에서 자타공인 15년차 베테랑 베스트가이드, 자칭 가수 유희열과 탈북 사업가 전철우를 닮았다고 하는 류반장의 다양한 분야의 해박하고 깊이 있는 해설과 간단한 베트남어 신짜오’(안녕하세요?), ‘신깐언’(감사합니다!)을 배우며 하롱베이 숙박호텔에 도착하였다. 늦은 밤 도착 시간은 현지시각 10시경 이었다. 체크인 후 방을 배정받아 무겁게 느껴지는 몸과 가방을 들고 올라가 샤워를 하고 원회장의 방으로 집결하였다. 출발 전 꽁꽁 얼려 가방에 넣어둔 소주 3병이 여전히 시원한 냉기가 있어 그 중 2병을 들고 원회장의 숙소로 향했다. 다들 모여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다음 날의 여정을 위해 각자의 방에서 폭신한 침대속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117일 아침 07:30시 호텔식당에서 조식을 마치고 하롱베이 선착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집결하였다. 모든 친구들이 전날의 빡빡한 여정으로 인한 늦잠이나 지각을 하지 않고 전원이 활기찬 건강한 모습으로 이동 차량에 올랐다. 전날 가이드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들의 다음날 6시 기상이 어렵게 생각되겠지만 실상 한국보다 2시간 늦은 시차로 인하여 적응되지 않은 생체리듬으로 더 이른 시간에 깨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나의 룸메이트 친구는 새벽 3:30시에 깨어나 샤워를 하는 소리에 잠결이 깨어 덩달아 조기 기상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하롱베이 관광을 위해 선착장의 유람선에 26명의 친구들과 가이드 류반장 그리고 현지인 여성 가이드 모두가 승선하였다. 유람선 선실 내부는 커다란 탁자와 긴 의자, 그리고 노래방 기기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선상이라기보다는 사방의 경치를 볼 수 있는 통유리로 된 멋진 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베트남 제1의 경승지로 알려진 하롱베이 만은 넓이가 1,500에 이르며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또한 석회암 구릉 지대가 오랜 시간 침식되어 생긴 3,000여 개(가이드에 의하면 실제 1969개 정도)의 섬과 기암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출발을 알리는 유람선의 엔진소리가 비경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뱃머리가 절경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행사나 인터넷에서 소개된 하롱베이의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았던 광경을 직접 현장에서 바라보는 감회는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오감만족의 감동이었다. 이러한 현장감이 여행의 매력이며 묘미라고 생각된다. 흔히 우리가 바다하면 연상되는 것이 파도, 갈매기, 비릿한 바다내음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은 이러한 요소들을 느낄 수 없어 마치 내륙의 잔잔한 호수 위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람선이 점점 깊숙이 진행할수록 가파른 바위와 멋진 절벽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로 마치 사방이 병풍에 둘러쌓인 듯한 파노라마를 연출하였다. 모든 친구들이 멋진 경치를 더욱 가까이에서 보기위해 2층 갑판위로 올라갔다. 때마침 유람선에 상주하고 있던 미모의 현지 여성사진사가 따라 올라와 우리 친구들을 멋진 배경으로 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는 도중에 키스바위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해면 위의 두 바위가 마주보는 모양의 형태인데 유람선이 선회하는 각도에 따라 돌출된 부위가 겹쳐 보여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이곳에서 얼떨결에 몇 번 누른 나의 셀카사진이 운 좋게 키스바위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한동안 운항하던 유람선이 외딴 섬 선착장에 도착하여 모두가 배에서 내린 다음 구명조기를 착용하고 15인승 정도의 쾌속정으로 나누어 탔다. 수 분에 걸쳐 빠른 속도로 잔잔한 수면에 물살을 가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그재그로 곡예 운전에 환호하는 사이 또 다른 선착장으로 도착하였다. 쾌속정에서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총각 뱃사공이 노를 젓는 나룻배에 옮겨 타고 절벽아래 수면위로 낮으막하게 뚫린 터널를 노를 저어가며 통과하였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사방팔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쌓인 고요한 호수같은 풍경이었다. 역시 하롱베이의 전설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꼬리치며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가 실감나기도 하였다. 가이드의 요청에 따라 모두가 야호~!’하고 소리를 지르니 마치 깊은 산속이나 음악당에서와 같이 메아리가 돌아왔다. 무인도인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주어 가파른 절벽위로 올라가고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있는 대장원숭이의 모습도 또다른 볼거리였다. 한 바퀴 선회한 나룻배는 들어왔던 터널을 통해서 다시 쾌속정으로 승선하여 정박하고 있던 유람선으로 되돌아 왔다.

 

  잠시 이동하던 유람선은 티톱섬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구 소련의 우주비행사 티톱이 호치민의 초청으로 베트남을 방문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 함께 티톱의 동상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 섬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선착장 옆에는 유람여행 중 볼 수 없었던 아담한 백사장이 있었다. 가이드에 말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모래사장으로 크루즈 여행객들은 수영도 하며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15분여 소요된다는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으로 만들어 졌는데 오르내리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어 줄지어 이동하였다. 오르는 도중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유람선에 보았던 것과 또 다른 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멋진 배경으로 사진도 만들며 전망대에 도달하였다.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계단을 급하게 오르니 전신과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좁은 전망대에는 북적대는 인파들이 서로들 각 자 멋진 광경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자 매우 혼잡하여 대충 몇 장의 셀카사진을 만들고 황급히 내려와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다음의 행선지인 석회동굴이 있는 섬의 선착장에는 확장을 위한 철골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섬의 중간쯤 있는 승솟(?)동굴입구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베테랑 가이드와 함께 들어선 넓은 동굴 속은 조명등이 비추고 있는 몇몇 형상의 종유석들과 반구모양들로 이루어진 천정, 빗물이 흘러들어 고인 바닥의 물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레이져빔이 가리키는 부처님, 원숭이 등 다양한 형상을 한 종유석과 석회동굴의 생성과정에 관한 해설을 듣게 되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석회동굴과 달리 이곳은 활동이 멈춘 죽은 석회동굴이라고 한다. 넓직한 동굴을 한 바퀴 돌아 출구로 나온 후 출구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상 풍경도 멋진 장관이었다. 전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계단을 내려와 바다 위에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유람선에 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여정이 바쁘게 진행되어 유람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석회동굴의 관람을 끝으로 유람선의 처음 출발지인 선착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회선하는 선상에 마련된 씨푸드의 만찬을 즐기며,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는 느낌이 출발할 때의 설레임과 달리 한층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즐길 수 있었다. 큼직한 선상식탁에 위에 풍성하게 차려진 해산물들(다금바리회,도미찜,,새우,,꽃게,갑오징어, )이 계속되어 공급되는데 큰 테이블의 공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꽃게나 쏙을 먹기 좋게 손질하여 주는 여직원의 손길도 분주하였다. 테이블 당 5~6명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으로 주문한 술과 가져온 소주를 겻들여 청정 해산물의 진수성찬을 만끽할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하롱베이의 커피와 노니의 쇼핑몰을 잠시 들른 후 여정의 피로가 쌓인 우리들의 몸을 시원하게 풀어주기 위해 발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마사지샵 입구에는 젊은 남녀의 현지인들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며 1시간여의 경락을 따른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모든 친구들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하롱파크, 작년에 완공되어 운행되고 있다는 세계 최대의 탑승인원을 자랑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나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관람차로 향했다. 일본의 기술로 설치되었다는 케이블카는 50여명의 승객을 탑승할 수 있으며 내부는 마치 손잡이가 달린 시내버스나 지하철과 같았다. 이동하는 케이블카에서 사방을 관망하며 건너편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우리는 대관람차를 타기위해 이동하여 한 바퀴를 회전하는 데 약 15분여여가 소요된다는 둥그런 모양의 대관람차에 5명씩 나누어 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하롱베이의 시내와 멀리 보이는 섬들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우리가 관람하던 시점이 늦은 오후의 해질녁이고 구름이 드리워진 흐린 날씨로 먼 곳의 시야가 선명하지 않은 면은 있었으나 그런데로 만족할 만한 관람이었다. 대관람차에서 내려온 우리는 주위에 조성된 일본풍의 건물과 정원을 둘러보려고 나서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부득이 왔던 경로를 되돌아가기 위해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는 밝고 화려한 조명아래 각 종 오락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놀이공원으로 조성된 듯 하였다. 되돌아가는 케이블카가 출발하자 어느새 찿아 온 어둠속에 대관람차의 조명과 바다위로 연결된 현수교의 조명들로 조금전 올 때와는 또 다른 야경을 볼 수 있어, 우리들은 운 좋게도 하롱베이의 낮과 밤의 풍경을 한꺼번에 관람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하루 여정의 마무리가 기다려지는 저녁식사 시간이다. 선상의 화려한 만찬 씨푸드로 점심을 할 때만 해도 오늘의 식사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듯 하였다. 그러나 숨가뿐 여정으로 소화가 다 되었는지 때가 되니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었다. 우리가 들른 식당은 삼겹살이 무한리필로 제공되는 한식당이었다. 불판위에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채소에 쌓아 소주와 함께하는 맛은 굳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된다. 이곳에서의 소주 값은 한 병에 7달러(8천원) 한국에서의 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술은 장소 불문하고 역시 소주가 제일인 듯하다. 지난 주말 여식의 혼사를 치른 강성춘 친구가 추가로 소주 몇 병을 제공하여 모두가 마음껏 즐기는 저녁식사가 되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수상인형극을 보기위해 공연장으로 이동하였다. 수상인형극의 기원은 10세기경 홍강 지역의 농부들이 주변 환경의 자연재료를 이용해 예술의 형태로 바꾸어 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수확을 끝낸 후 연못과 논둑에서 즉흥쇼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러한 예술형태는 북부베트남의 고유한 형태이며, 세계에서도 유일하다고 한다.

공연시각 19:30시까지는 30여분 남아 있어 공연장 주위 시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려는데 가이드로부터 공연장으로 입장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26명의 우리 일행을 위해 곧바로 공연을 시작하겠다는 배려가 있었다. 시작 전 배우들의 인사와 배경음악 연주에 이어 물이 고인 무대 위로 농경의 모심기와 한가롭게 노는 오리들의 부화에 이은 풍요를 즐기는 궁중의 무용 등 내용으로 20여분 간의 인형극이 막을 내렸다. 무대 뒤의 발이 쳐진 뒤쪽에서 긴 막대에 연결된 인형들을 조정하던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끝으로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 20여년 전에 보았던 농경생활을 주로 묘사하던 수상인형극과 많은 차이가 있어 인형극도 시대변화에 따라 그 내용에도 변화가 따르는 듯하였다. 공연관람을 끝으로 버스에 올라 숙소가 있는 하노이를 향해 3시간 반가량 달려 늦은 밤 11경에 하노이 숙소 호텔에 도착하여 각 자 방을 배정받아 침실로 향했다.

 

1118일 아침 7:30시 호텔 조식을 마치고 승차하여 오늘의 여정지 닌빈성 짱안으로 출발하였다. 하노이에서 짱안까지 남쪽방향으로 거리는 약 93, 소요시간 2시간을 달려 드디어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짱안에 도착하였다. 닌빈의 꽃이라 불리는 짱안은 최대길이 320m의 석회동굴을 비롯한 총 9개의 석회동굴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버스 주차장에 하차하여 좁다란 다리를 건너니 냇가의 나무계단에 삼판선이라는 조그만 나룻배들이 즐비하게 정박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4명씩 아줌마 사공이 노젓는 삼판선에 나누어 타고 지급된 구명조끼를 입고 서서히 출발하였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으로 형성된 구불구불한 수로를 따라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인 절경을 여유롭게 즐겼다. 맑은 물이 흐르는 늪지대의 구비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새로운 풍경으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는 도중 말이 통하지 않는 친절한 아줌마사공이 먼 곳을 가리키며 몸짓으로 호랑이 흉내를 내며 그 형상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좁은 굽이의 수로를 따라 얼마쯤 가다보니 비교적 넓은 공간에 고인 물 가운데 2층 지붕의 인조물인 정자가 있었다. 그 곳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젊은 남녀들에게 ‘Congratulation~!'의 축하 말을 전하니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답하기도 하였다. 계속 수로를 따라 가며 독수리상의 형상을 비롯한 다양을 경치와 좁고 낮은 터널 멏 개를 지나기도 하였다.

 

  많은 터널 중에 압권은 아마도 항떠이(?)동굴일 것이다. 겨우 나룻배 한 척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폭에 낮은 천정 곳곳에 뽀족히 솟아있는 수많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가장 긴 터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터널 중간 중간에 전등이 설치되어 있어 희미한 전등 불빛을 따라 통과할 수가 있었다. 노련한 베테랑 아줌마사공은 터널입구를 들어서면서 장애물이 나타나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큰 소리를 질러 경고를 알렸다. 우리는 경고를 알리는 사공소리가 들리면 일제히 수구리~!‘를 외치며 일제히 나룻배의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장애물을 통과하기를 수 차례를 하고서야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난코스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아줌마사공의 노젓는 실력에 대한 신뢰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터널을 통과 후 어느 정도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목에 걸고 온 베트남모자 을 쓰고 비를 피해보려 하였다. 베테랑 아줌마사공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우왕좌왕하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우산 하나를 넘겨주고 본인은 비닐우의를 챙겨 입으며 웃고 있었다. 우산을 중심으로 모두들 돌아앉아 머리들만 좁은 우산 아래로 모아 비를 모면하려던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추고 햇빛이 내리쫴는 날씨로 변했다. 비가 그친 날씨에 우산을 접고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또다시 갑작스런 소나기로 우산을 펼 시간도 없이 쏟아졌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가 베트남의 기후라는 생각이 들며 또다시 가랑비가 내리는 수로를 따라 우산을 펴고 노를 저어갔다.

  여유롭고 운치 있는 가랑비와 함께하는 분위기에 빠진 감성숙녀 행복채널(박명순) 라이브가수의 노래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앵콜 요청에 의해 만남의 노래로 시작된 뮤직비디오는 노래가 흐르는 동안 사방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아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동화되었는지 아줌마사공도 답가로 베트남 노래 한 곡을 우리들에게 불러 주었다. 노래가사와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친근한 리듬가락과 끝 부문에 들린 호치민~’이라는 가사로 보아 호치민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생각되었다. 장시간 쉼 없이 노를 저으며 밝은 표정으로 노래까지 선사한 아줌마사공에게 고마운 마음에 노래를 마치고 소액의 팁을 전달하였다. 지금도 소액의 팁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라 당시 팁을 조금 더 주었을 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종착지가 가까워지자 고객만족도 설문지 응답요청이 있어 우리팀은 박총무가 최고의 만족도에 체크하여 주었으리라 생각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롱베이와 짱안을 비교한다면 규모와 스케일이 큰 하롱베이에 비하여 하롱베이의 미니어쳐 같은 짱안은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규모의 맑은 수로와 정감있는 사공과 나룻배, 수로 주변과 바닥의 수초들, 좁다락고 나지막한 터널이 주는 긴장감 등이 한층 재미있고 즐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1시간 반가량의 나룻배 여정을 마치고 나루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염소불고기 허브정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다시 숙소가 있는 하노이를 향해 출발하였다.

  짱안을 출발하여 2시간가량 지나 하노이에 도착하였다. 어제에 비해 여유롭게 여정을 마친 우리 일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2시간에 걸친 베트남 전통마사지를 받으며 여행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 이 후 라텍스, 게르마륨 등의 매장을 들러 쇼핑관광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져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센(SEN) 레스토랑 뷔페식당이었다. 이곳은 베트남 최대 규모의 레스토랑으로 1,0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100여가지 이상의 다양한 베트남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식당입구 야외무대에는 젊은 가수들이 연주와 노래를 부르고, 식당 내부에는 전통의상 복장의 여성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곳 식당에서는 식수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식수 한 병씩을 들고 가라는 가이드의 말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식당에 들어선 우리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차려진 음식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각 자 입맛에 맡는 음식을 담아 식탁으로 향했다. 나는 돼지갈비 구이와 베트남 쌀국수 분짜와 그 밖의 해산물구이 등을 맛있게 먹었다. 세 테이블에 나눠앉은 우리 일행은 술 세병을 주문하여 마시고 나서 들고 온 소주를 마시려는 데 방안에 있던 종업원의 눈초리가 마땅치 않는 기미를 보였다. 우리 친구 중 누군가 이들 2명에게 팁을 주니 태도가 바뀌어 안주거리가 될 음식까지 서빙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여행 중 팁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사례였다.

 

  풍요로운 만찬의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하노이 시내의 롯데전망대로 향했다. 하노이 중심가에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롯데센터는 2014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전망대 전용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전망대에 올라 하노이 시내의 야경을 둘러보며 구경하였다. 전망대 한편에 투명유리 바닥으로 된 곳에서 발 아래로 보이는 짜릿한 야경을 감상하며 인증샷도 남겼다. 또한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LED조명판에 'AN SEUNG MIDDLE 19'를 입력한 후 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내려와 어제 묵었던 숙소를 향해 이동하였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차기 동창회장을 선출하기 위하여 원회장의 숙소로 모였다. 현 회장인 진광섭회장이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인하여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다. 부득이 현 회장 부재중인 이번 여행모임에서 차기 회장선출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차기 회장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1일부터 향 후 2년간 우리 동창회를 이끌어 갈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 동창모임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25여년 동안 그 어느 동창모임보다 잘 이루어져 선 후배의 동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이러한 저력이 년 중 몇 차례 시행되는 국내 모임뿐만 아니라 해마다 추진되고 있는 해외여행도 기대 이상의 참여로 감동적인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동창모임이 가능한 배경에는 헌신적인 회장님을 비롯한 총무님들과 임원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봉사, 그리고 묵묵히 후원해 주는 친구들과 이에 부응하여 동참한 친구들 모두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믿고 있다. 향후에도 우리 동창들 모두가 회장을 역임하여 최후의 1인까지 소명을 다 할 수 있는 시기(향후70)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기를 소망하며 기대해 봅니다.

 

  이리하여 2년마다 시행되는 회장단 선출 때 마다 지금까지 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번 회장선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로 인하여 장시간 이동하던 차량 내에서나 집결한 호텔 숙소에서 차기 회장선출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토의가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 졌다. 결국 각자 나누어준 쪽지에 임의의 추천 대상자를 적어내는 비밀투표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12차 투표를 걸친 우여곡절 끝에 압도적인 지지로 전주의 이정만회장이 선출되었다. 확정된 결과는 원회장이 귀국 즉시 이정만회장에 통보해 주기로 하고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더욱 의미 있는 날로 만들게 되었다. 여행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날 귀국일정만을 남은 상황이라 대부분의 친구들은 각 자의 숙소로 돌아가고 몇 몇 친구들은 원회장 숙소에서 늦은 밤까지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새로 선출된 신임회장단이 우리 동창회를 더욱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각 자가 회장 또는 임원이란 생각으로 동창모임이나 행사가 카톡이나 메시지로 고지될 경우 적극적인 자세로 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극적인 대응은 많은 친구들에게 일일이 확인전화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행사를 주관하는 임원진들을 곤혹스럽고 힘들게 합니다. 이에 더해 동창회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요구됩니다. 이는 어렵고 큰 도움이 아니라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 중 동창회 참여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친구들에게 독려하여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동반될 때 동창회는 더욱 발전되고 운영하는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에도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1119일 아침, 어제까지 모든 여행일정을 마친 마지막 날의 아침은 여유로웠다. 어제 밤 늦잠을 잔 몇 몇 친구들은 뒤 늦게 탑승하여 귀국 길의 하노이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일정 없는 마지막 날의 시간이 아쉬워 가이드에게 어디라도 잠시 들러 구경할만한 곳을 요청했지만 일정상 자기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에 이동하는 버스에서 바깥을 구경하며 공항에 도착하였다. 하노이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12:30시에 이륙하는 KE0480편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기내에서 중식으로 나온 비빔밥과 시원한 맥주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영화 한 편을 보며 도착 예정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한국시각 오후 6시 반경이 되었다. 입국수속을 마친 모든 친구들은 로비에 잠시 모였다. 시간상으로는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해산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였으나 고향이나 부산, 광주, 전주 등 멀리까지 가야하는 친구들이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시간에 따른 여건으로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곧 바로 헤어졌다.

  이렇게 2017년도 베트남 동창여행은 34일의 일정으로 즐겁고 재미있고 건강하게 마치게 되었다. 멋지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모든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부득이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은 다음 기회에 모두가 동참하여 먼 훗날 즐거운 추억을 함께하기를 바라며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 대단히 고맙고 감사합니다~! ~~!

 

 

20171130

 

하롱베이를 다녀온 후 열흘 지나~

신 원 붕 올림

 

 

 

<추서: 구호>

 

우리 모든 친구들과 역대 회장들과 다 함께 다음과 같이 다짐 합니다~!

 

() : 원기 왕성하여 활기찬 세상~!

() :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세상~!

() : 여유롭고 풍요로운 세상~!

() : 진솔하고 정감있는 세상~!

() : 이런 세상을 19회 동창들이 다함께 만들어 갑시다~!!!

 

(모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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