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중국

황산기행

신원붕 2024. 5. 12. 20:04

○ 황산 기행

 

황산(黃山)은 "五岳歸來不看山,黃山歸來不看岳" (오악귀래 불간산, 황산귀래 불간악 : 오악을 보고 나면 중국의 다른 산은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마저 보이지 않는다)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중국 제일의 명산이라 한다.

 

중국의 명산인 황산을 향해 출발한다.

5월 8일 12:25시에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13:45시 항주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15:10시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버스에 올라 약 260Km 거리의 황산시를 향해 출발하였다.

차량은 드넓은 첸탕강(钱塘江)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달린다.

항저우(杭州)는 저장 성의 성도이자 중국의 7대 고도 중 하나이다. 12세기 금나라에 패하고 중원에서 피난 온 왕조가 남송의 도읍으로 삼으면서 150년간 남송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경항 대운하(京杭大运河) 의 남쪽 끝에 위치한 항저우는, 그보다 앞선 609년에 강남 대운하(江南大运河)가 완성되면서부터 수로 교통의 요지였으며, 산이 많고 물이 풍부하니 토지가 비옥하고 곡물이 풍족하여 일찍부터 상업이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야지대인 항저우 시가지를 벗어나 황산으로 향하는 길은 산악지대로 접어든다. 산악지대 사이의 좁은 분지나 계곡의 마을들이 산세와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이다.

황산이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거칠고 험해진다. 경사가 가팔라 오르기 어려운 능선 사이에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차나무가 심겨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으로 농토가 부족한 황산 주민들은 예로부터 자녀가 13, 14세가 되면 타지로 보냈다 한다. 이리하여 이들의 생계방식은 농업이 아닌 전당포와 차 그리고 나무와 소금을 판매하며 삶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옛 안휘성의 모습을 간직한 휘주박물관에서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산자락 아래 아담한 휘주마을을 지난다. 휘주마을은 예부터 문인마을로 알려졌다고 한다. 마을의 주택들은 대부분 3~4층으로 조성된 검은 기와에 흰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인의 마을답게 흰 벽은 종이를 상징하고, 검은 기와는 먹을 상징한다고 한다.

 

차량은 3시간을 넘게 달려 황산 시에 가까워진다. 수면에 반사된 산 능선의 지는 해가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연기를 피우는 산 아래 농촌마을도 우리의 시골 풍경처럼 정감이 간다.

항저우공항을 출발한지 3시간 반이 지나 황산 시에 도착하였다. 바로 식당으로 향해 저녁식사를 하였다. 시장기가 반찬인지라 포식한 후 청대옛거리 야경을 나섰다.

청대옛거리는 송나라 때부터 형성되어 명청대에 상업이 흥하던 거리라 한다.

휘황찬란한 조명등으로 밝혀진 옛 거리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상가 그리고 관광객들이 활보한다.

거리는 기념품을 비롯한 먹거리 상가들이 즐비하다. 상가 양변에 위치한 제과점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과자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시식을 권한다. 방금 만든 과자들의 구수하고 달콤한 맛이 구미가 당긴다. 현지 가이드는 다음 날 황산 등반 시 간식용으로 짐이 되지 않도록  소량만 구입하라고 한다.

화려한 옛거리 곳곳을 둘러본 후 숙소로 이동하였다.

 

숙소는 천도국제호텔로 4성급이라 한다. 체크인 후 배정받은 룸으로 향하는 복도 카펫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불쾌감을 준다. 방 안을 둘러보니 냉장고가 없다. 늦은 속도의 와이파이도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늦은 시각이라 내일 일정을 위해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로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모기들이 귓가를 맴돌며 윙윙거린다. 커다란 목욕타월로 방패 삼아 얼굴을 가리고 취침하였다. 호텔의 외관에  비해 내부 시설과 환경이 형편없었다.

이튿날 현지가이드에게 위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가이드 왈 이지역의 생활풍습이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특성으로 냉장고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것은 국가에서 정보통제로 차단하기 때문이란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지만 여행의 주요 일정을 위해 그냥 묵과하였다.

 

이른 아침(7시) 탑승차량은 숙소에서 약 100km 거리의 황산 풍경구 매표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황산(黄山)의 본래 이름은 '이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나라 시절 황제였던 현종이 이곳을 찾아와 수양을 함으로써 황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황산은 이백을 비롯한 중국 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고, 지금도 중국의 풍경화와 시에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1,864m의 연화봉(莲花峰), 1,864m의 광명정(光明顶), 1,810m의 천도봉(天都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72개의 봉우리가 첩첩이 둘러싼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는 곳이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기이한 봉우리,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 파도처럼 몰려오는 운해가 황산의 자랑이라 한다. 황산은 1년에 200일 이상 구름에 가려져 있어 '운산'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황산은 동양화의 먹과 농담의 여백을 일러준 산이라 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황산을 보고서 동양화를 이해했다고도 한다.

1990년에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황산 풍경구 매표소의 대기줄은 황산의 앞산인 자광각(慈光阁) 방향과 뒷산인 운곡사(云谷寺)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수많은 중국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자광각 방향에 비해 우리의 운곡사 방향은 대기 줄이 한산하다.

매표소 입구를 통과 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산 능선을 굽이돌아 20여분 후 운곡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에 4명씩 탑승하여 출발한다. 험준한 계곡 사이로 연결된 케이블카에서 사방의 절경을 놓칠세라 두리번거리며 영상으로도 담아본다. 화창한 날씨지만 투명도가 떨어진 케이블카 유리창이 멋진 경관의 선명도에 아쉬움을 남긴다.

드디어 도착한 케이블카 승강장을 나와 돌아보니 멋진 경관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눈앞의 깎아지른 바위산 너머 옅은 구름 위로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펼쳐진 장관을 연출한다.

계단 데크길을 올라 시신봉(1,683m)을 뒤로 한 채 걷는 길은 우거진 숲길 속의 내리막 계단길이다.

갈림길에서 우측의 멀지 않은 곳에 '흑호송'이 있다. '흑호송'은 수령이 약 700년이 넘는 소나무로 높이 15m, 검은 호랑이가 언덕에 엎드린 듯한 모습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시 걷는 내리막길의 산중턱에서 '몽필생화'를 만난다. '몽필생화'는 암석 위의 소나무가 붓 모양을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당나라 시인 이백이 붓을 던지자 자라난 소나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어지는 길은 북해호텔을 지나 서해호텔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단결송을 볼 수 있다. '단결송'은 황산 10대 명송 중 하나로 여러 곳으로 손을 뻗은 나뭇가지가 56개여서 중국에서 살아온 56개의 민족의 단결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해호텔을 거쳐 배운정에 이르게 된다. 배운정의 앞뜰에서 출발 전 현지가이드가 간식거리로 제공한 김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김밥이 간식이라니 점심식사 장소가 궁금하다. 가이드에게 식사장소를 물어보니 광명정이라 한다. 광명정이라는 말에 놀라 먹고 있던 김밥이 목에 걸린다. 광명정은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배운정 맞은편 멀리 높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산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둥그런 레이더가 보이는 기상관측소이다. 과연 광명정까지 점심때가 아니라 저녁때까지라도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멀고도 높은 곳이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가 간식용으로 김밥을 제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휴식 후 다시 걷는 길은 서해대협곡을 향한다.

황산의 등산은 지루할 틈이 없다. 볼 것도 많고 오르내리는 길도 많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의 절벽들의 모습과 하늘을 찌를 듯 한 봉우리들이 장관이다. 도저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벽의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린 질긴 생명력의 소나무들도 황산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다시 옮기는 발걸음은 점점 비좁고 가팔라지는 암벽 사이의 외길 '서해대협곡'으로 내려간다. 비좁고 가파른 내리막의 계단 길은 좁은 암벽 사이를 통과하기도 하고 벼랑에 걸린 잔도와 동굴로 되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이곳에 와 보고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20년 동안 이 길을 정비하여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황산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서해대협곡은 황산의 험준한 비경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총길이가 11km로 트레킹에 4시간이 소요된다. 아찔한 절벽을 바라보며 계단과 벼랑 틈으로 낸 길을 번갈아 걷는데 고도차가 400m에 달해서 체력 소모가 가장 많은 구간이다. 일단 들어서면 중간에 되돌아나가기 힘들다. 무조건 끝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에 트레킹 시작 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절벽의 좁고 급경사의 계단 길은 긴장감을 한시도 놓을 수 없어 난간과 밧줄을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긴다. 내딛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주위의 비경을 감상하기를 수 십 차례 후 서해대협곡의 곡저 모노레일 탑승장에 당도하게 된다.

2014년 서해 대협곡에 280억 원을 투자한 모노레일이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모노레일은 해발 1,706m의 석상봉(石床峰)에서 1,209m의 곡저(谷底)까지 892m 거리를 5분 만에 주파한다고 한다.

우리는 광명정으로 오르기 위해 모노레일 탑승장으로 이동하였다. 모노레일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협곡 길로서 1,700m 정도 되는 곳으로 다시 올라가서 광명정으로 향한다.

모노레일 탑승장은 최대한 좋은 경치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모노레일이 출발한지 6여분 지나 정상에 도달한다. 멀리서만 바라봤던 기암괴석이 손에 잡힐 듯하다.

광명정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개화하여 반발한 만병초 군락지를 지난다. 맑은 날씨의 태양에 특이한 형태의 구름에 둘러싸여 무지갯빛을 띄우며 잠시 관광객들의 탄성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다.

광명정을 향해 올라가는 널따란 계단길이 중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기상관측소의 둥근 레이더 건물 주변에도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우리 일행은 광명정 2층의 뷔페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단출한 메뉴의 식단이지만 창밖의 절경이 산해진미를 대신한다.

 

식후 하산 길은 단하역의 태평케이블카를 향하는 코스이다. 숲길의 내리막 계단 길은 간간이 피어있는 만병초의 꽃들이 걷는 발길을 가볍게 해 준다.

걷는 길은 가파른 절벽 위로 우뚝 솟은 바위, '비래석'을 만난다. 비래석은 바위의 모양이 마치 하늘로 나르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 크기는 높이가 12m, 길이 7.5m, 넓이가 2m, 중량이 360톤이라 한다. 좁은 돌계단으로 올라 비래석의 아찔한 절벽 난간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경이롭다. 수많은 화강암 봉우리와 바위들이 연출하는 장엄한 풍경에 나 자신이 왜소해지고 숙연해진다.

다시 몸을 추스르며 내딛는 하산 길은 만발한 만병초와 소나무 사이로 저수지가 보이는 길 따라 정각(행지정)을 지난다. 비교적 완만한 계단의 우거진 숲길은 배운정으로 향한다. 배운정에서 오전에 서해대협곡으로 향하는 갈림길의 이정표바위를 다시 보니 반갑다.

 

이정표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단하역의 태평케이블카를 탑승하기 위해 오르막의 계단 길을 걷는다. 태평케이블카는 수십 명이 탑승한다. 마치 대형버스가 줄에 매달린 듯한 모양이다.

탑승하여 서서히 출발하는 케이블카는 첫 봉우리를 지나자 깊숙하고 가파른 협곡 위를 가로지른다. 한 줄에 매달린 거대한 버스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바로 그때, 케이블카가 갑자기 멈추며 줄에 매달려 출렁거린다. 모든 승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괴성을 지른다. 마치 고속 주행하던 대형버스가 급정거를 하였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서서히 하산하던 케이블카는 몇 차례 서다 가다를 반복하며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운행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온종일 평생 동안 걸을만한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내리며 기암괴석과 명송 그리고 만발한 만병초를 만끽한 등산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숙소로 귀환하는 버스에 오르니 긴장감이 풀리며 시장기가 돈다. 먼 거리의 시내까지 달려온 버스는 무한리필의 삼겹살집에서 멈췄다. 역시 시장이 밥맛이란 말이 실감 난다. 모두가 포식 후 산행으로 피로가 쌓인 몸을 풀어주기 위해 발마사지를 받고 늦은 시각 숙소로 향했다.

 

숙면을 취한 이튿날 아침, 오늘은 서호가 있는 항주로 가는 길에 잠구민택을 들러 본다.

잠구민택은 황산시 휘주구 잠구라는 마을에 위치한 명청시대 민가 10여 동을 개축하여 만든 역사적, 미술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입구에는 단체관광객들과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북적거린다. 흰 벽의 옛 건물들 안에는 두 곳을 제외하고는 내부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점이 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축물 내부에 매점이 있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항주 '용정차'의 차밭으로 향했다.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로 꼽히는 용정차는 항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용정차는 서호 용정산의 용정사에서 유래되어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지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차는 200여 년 전 청나라 때 청 강희제와 당 건융제가 6차례 강남(양쯔강 이남) 내려왔다고 한다. 항주를 찾은 황제에게 좋은 용정차를 대접하였다. 황제는 맛없고 씁쓸한 차맛에 찻잔을 뒤엎고 화를 내며 말을 타고 몇 발자국을 가지 않아 뒷맛이 구수하고 좋았다고 하였다. 황제가 다시 돌아와 마셨다 하여 용정차라 불린다고 해설을 한다.

지금까지도 북경으로 보내지며 국빈 방문 시 선물용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차 판매점으로 향하는 도로 양변과 산 능선의 잘 손질된 차밭들과 판매점 주변 환경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차 시음과 함께 설명회를 듣고 나와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송성가무쇼' 관람이다.

쇼 공연장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입장하였다.

공연장 매표소 입구로 들어서면 화려한 공간이 공연장까지 이어진다. 관람객의 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여 치솟는 분수대, 기념품, 먹거리, 카페 등 넓은 공간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무쇼는 항주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현대적 영상과 더불어 레이저쇼를 곁들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연은 고대로부터 청나라와 남송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항주의 문화를 표현한 총 4막의 공연이다. 

제1막은 청나라가 멸망하며 후손들이 남쪽으로 도피하여 항주에 150여 년 동안 정착한다. 개봉(소림사)을 북송이라 하고, 항주를 남송이라 하였다. 송나라 때 가장 흥성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2막은 청나라 때 금나라의 침입을 용감하게 막았던 악비장군의 이야기다. 내시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악비장군의 이야기.

제3막은 가난한 집 아들 양산대와 부잣집 추경태의 사랑(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라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두 남녀가 한 쌍의 나비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간다. 백사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

제4막은 현재의 항주 '항주는 세계에서 모인다'는 내용으로 공연된다.

우리는 VIP석 바로 뒷좌석 좋은 위치에서 관람하였다. 공연 중 배우들이 직접 VIP석에 차를 제공하기도 한다. 생동감 넘치는 화려한 공연에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레이저쇼가 펼쳐질 때에는 객석의 관객들도 공연무대에 빨려 들어 무대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멋진 쇼공연을 관람하고 숙소 체크인 후 취침하였다.

 

오늘은 3박 4일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서호와 성황각을 둘러본 후 귀국하는 일정이다.

서호(西湖)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시가구역 서쪽에 면한 호수로 중국국가단위풍경구명승구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담수호이다. 2,000년 전에는 첸탕강(钱塘江)의 일부였다가, 진흙모래가 쌓여서 남과 북쪽에 있는 오산(吴山)과 보석산(寶石山)을 막아서 형성된 호수라 한다. 서호는 3개의 제방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각각 소제(苏堤), 백제(白堤), 양공제(杨公堤)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이 서호는 그 옛날 중국 미인인 서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서호는 둘레 15km, 깊이 1~3m의 인공호수로 항주를 대표하는 명소로서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라 한다.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에 우산과 우의를 챙겨 탑승한 차량은 서호를 향해 출발하였다.

서호 근처에서 하차하여 나무들이 우거진 널따란 도로를 걸어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수변의 정자와 함께 '화항관어(花港观鱼)'의 표지석이 눈에 띈다.

해설에 의하면 화항(花港)은 소제 남서쪽의 화가산(花家山) 산기슭에 남송대의 관리 윤승(允升)이 조성한 인공 연못이라 한다. 화항관어(花港观鱼)는 그가 이곳에 누각을 짓고 늦봄 목련 꽃잎이 흩날리는 연못에 붉은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풍경을 즐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총 5개 풍경구로 구성된 대형 공원이며, 풍경구의 중심에 있는 홍어지(红鱼池)에 노니는 오색 금붕어들과 붉은 잉어에게 먹이를 주면 몰려드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한다.

화황관어를 지나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가랑비가 내리는 선착장에는 서너 척의 유람선들이 유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드넓은 호숫가의 버드나무와 호수의 유람선들이 우중의 운치를 더해 준다.

만석이 된 유람선은 선착장을 뒤로하고 출발하였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 선내는 중국인들의 대화소리가 소란스럽다.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경관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우산을 들고 선미의 밖으로 나왔다. 역시 시야가 트인 선상에서의 풍광이 유람의 제 맛이다. 다행히 빗줄기마저 수그러들며 우산을 접어두었다. 호수를 운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유람선들, 호수의 작은 섬들, 호수 주변의 숲과 아파트를 비롯한 현대적 건물 그리고 숲 위로 우뚝 솟은 고풍스러운 누각들을 눈과 스마트폰에 담는다.

궂은 날씨로 먼 곳의 전경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유람이었다.

 

유람선에서 하선하여 다음 행선지인 '성황각'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올랐다. 성황각 주차장의 만차로 오산의 오르막길을 걸어 올랐다.

오산(吴山) 정상에 오르면, 41.6m 높이의 성황각이 있다. 총 7층으로 건설된 성황각은 항저우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5층은 누각의 장식이 전망을 가려 사진 촬영에 적합하지 않으니, 4층이 서호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3층에는 찻집이 있다. 1층의 옛시가지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림 같은 섬세한 미니어처로 벽에 길게 부착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4층의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서호와 시가지를 둘러보며 영상에 담았다. 서호에 떠 있는 3개의 섬과 뇌봉탑이 산수화를 그린 것처럼 펼쳐진다.

수호신을 모신 옆 사찰 내부를 둘러보고 올랐던 길로 하산하였다.

올랐던 오산 입구에 관광객들로 가장 붐비는 청하방 거리가 있다. 청하방은 청나라 시절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항주가 남송 시대의 도읍이었을 때부터 청하방은 가장 번화가였다고 한다.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청하방거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옛 거리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깨고물을 뿌려 찐 과자 '호마병', 옛날 청나라 말기에 거리에서 유행했다는 요지경 '라양피앤' 등 눈요깃거리를 둘러본 후 차량에 올랐다.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길의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전 점심을 위해 공항 근처의 샤부샤부 식당으로 안내한다. 우리 일행 9명이 먹기에는 부족한 듯한 양의 채소와 소고기, 식탁 중앙의 전골국물이 끓고 있다. 끓는 국물에 야채를 넣어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너무나 매워 입술과 혀가 얼얼해진다. 모두가 너무 매운 음식에 손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때마침 돼지고기 수육 두 접시가 식탁에 배달되자 일시에 수육이 바닥이 났다. 잠시 후 종업원이 허겁지겁 달려와 배달이 잘못된 수육을 가지러 왔지만 이미 빈 접시만 남아 있었다. 종업원이 가이드에게 큰소리로 항의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가이드 또한 식당 측의 실수를 자기한테 항의한다며 투덜거린다. 현지가이드도 이 식당의 특성을 모르고 처음 들른 듯하다. 가이드는 자비로 맵지 않은 요리 두 접시를 주문했다며 식사를 이어하기를 요청하였다. 아마도 그 식당은 전통적으로 매운 사천성 요리인 듯하였다. 이렇게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여행의 목적이 낯선 풍경과 함께 낯선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낯선 음식문화체험이란 생각이 든다.

식후 바로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마치고 무사귀환으로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

 

3박 4일 동안 즐거운 여정을 함께 한 분들(8명)과 동행하며 일행의 안전과 흥미로운 해설로 뜻깊은 여정을 만들어 준 현지가이드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2024년 5월 12일

                          황산을 다녀와서~

                                                            신 원 붕 씀